강우방 이화여대 명예교수, 문화유산 사진 7만점 기증 전시
“인류 조형물의 90%가 문양… 만물 생성의 원리 숨겨져 있어”
“주객의 전도.”
원로 미술사학자 강우방(79)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금껏 미술사학이 등한시해 온 문양(文樣ㆍ무늬)을 복권시킨 명분이다. “문양은 예술사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해 왔다. 아무 의미 없는 장식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가 창조해 온 조형물의 90%가 문양이다. 근대 이전엔 전부 문양이다. 미술사학의 주체는 문양이어야 한다.”
그러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 회화에서 공간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건 추상적인 문양들이다. 그럼에도 미술사학자들은 형태를 통해 정체를 추정해볼 수 있는 구상적인 부분만 연구하고 문양은 내버려뒀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강 명예교수를 만난 건 30여년 동안 찍은 국내외 문화유산 사진 7만여점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기증했고, 이를 가지고 전시회를 연다고 해서다.
강 명예교수의 지론은 찍은 사진에서도 드러난다. 주로 폐허 속 사찰 유적을 찍었는데 자연과 어울리도록 찍어뒀다. 그는 “미술사학자 대부분은 답사를 가면 작품만 보기 일쑤”라며 “석탑과 석불 등은 주변 자연 풍광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기 때문에 함께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폐허를 거닐며 그 시대의 호흡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사진도 그냥 멋진 것, 대표적인 것 하나만 찍는 게 아니라 많이 찍는다. 어느 한 구석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서다. “각도와 조명에 따라 달리 보이는 모습들을 모두 담으려다 보니 한 작품을 찍는 데에 36컷 필름 한 롤을 다 쓰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국립박물관에 재직하던 1900년대까지가 답사의 시기였다면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자리를 옮긴 2000년부터는 연구의 시기다. 그가 주목한 건 기호의 상징성이었다. 그 해 고구려 벽화를 보고선 문자만 언어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조형언어’라는 개념이 돋아났다.
본격 연구에 착수하면서 그는 조형물이 하는 말을 듣게 됐다 한다. “우주에 충만한 영기(靈氣)라는 것을 옛 사람들이 조형으로 가시화해 왔다”고 강 명예교수는 말했다. 고대 조형물에 포함돼 있는 상징 기호들을 해독하면 생명 생성의 과정과 원리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도 마찬가지다. “성화(聖畫)를 보면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있지 않나. 그건 보인다. 그래서 그것만 연구하는 거다. 하지만 그림에는 주제 말고도 복잡한 문양들이 있다. 사실 그게 주체다. 그 문양에 만물 생성의 원리가 숨겨져 있다.”
강 명예교수의 꿈은 오래된 인류의 상징인 이 조형언어를 부활시키는 것이다. “인류가 조각품을 만들었다는 30만년 전부터 장인(匠人)들에 의해 전승돼 온 조형언어가 14~16세기 르네상스 이후 장인 실종과 함께 퇴화하더니, 19세기 과학화 및 산업화 이후 완전히 망각되고 말았다.” 그렇기에 그는 “문양을 다시 읽어내면 우리가 모르는 99% 무의식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단초가 마련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강 명예교수에게 가장 인상적인 건 앎에 대한 의지다. 그는 “분야 간 관계를 모르면 권위자가 될 수 없는데 전공이 세분화되면서 미술사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하더니 자신의 연구가 “돈키호테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이 세계를 계몽하겠다는 게 내 포부”라 말했다. 누가 알랴, 그에 대한 의심이 무지의 소산일지. 강 명예교수는 17, 28일 오후 2~4시에 인사아트센터 1층에서 직접 조형언어 이론과 방법론을 설명한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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