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 내가 귀여운 건 아니까 말하지 마 / 난 매력이 너무 넘쳐 / 이렇게 태어나서 굳이 노력할 필요도 없어 / 난 샤도네이 같아, 오래 지날수록 좋아지거든 / 네 남자 좀 데려가 / 친구 이상이 되고 싶다는 거 같은데 / 내가 이렇게 뉴스거리가 되는 건 내 잘못이 아냐 / 내가 너무 잘난 게 죄지’
이런 가사를 듣고 백설공주처럼 생긴 미녀를 떠올렸다면 ‘주스(Juice)’라는 이 노래의 주인공을 보고 놀랄 수도 있겠다. 키 178㎝에 100㎏이 훌쩍 넘는 체구로 힙합 리듬에 맞춰 격렬한 춤을 추다 플루트를 꺼내 부는 모습은 당혹스럽기까지 할지 모른다.
자신감 넘치는 몸짓으로 ‘내가 바로 여왕’이라고 외치는 이 가수의 이름은 리조. 지금 현재 미국 대중음악계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중고 신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지난해 가장 즐겨 들었던 곡들 중 하나로 리조의 ‘주스’를 꼽았다.
그의 인기는 이달 27일(현지시간) 열리는 그래미상 최다 부문 후보자라는 사실이 단적으로 보여 준다. 리조는 그래미상의 노른자위인 올해의 앨범ㆍ레코드ㆍ노래 3개 부문은 물론, 신인상까지 총 8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았던 신인인 빌리 아일리시가 6개 부문 후보에 그친 걸 보면 미국 대중과 평단이 리조에 얼마나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신인상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리조는 지난해 이미 7년 차 중견 가수였다. 소규모 레이블에서 2013년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2015년 두 번째 앨범을 내놓으며 조금씩 인지도를 넓혀 나갔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메이저 레이블인 워너뮤직을 통해 세 번째 앨범 ‘커즈 아이 러브 유(Cuz I Love You)’를 발표하며 전국구 가수로 다시 한번 데뷔했다.
리조는 모바일 시대가 낳은 스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히트곡 ‘트루스 허츠(Truth Hurts)’가 대표적인 예다. 2017년 발표된 이 곡은 당시 리조 스스로 “음악을 그만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로 반응이 미미했다. 그러나 지난해 10대들이 즐겨 쓰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인 ‘틱톡’을 통해 퍼져 나가며 ‘역주행’에 성공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까지 올랐다.
‘트루스 허츠’의 인기와 함께 리조는 팝계의 신데렐라가 됐다. 타인의 시선과 상관 없이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하고 사랑하자는 ‘자기 몸 긍정주의’ 메시지를 녹인 가사 때문만은 아니다. 힙합과 팝, 리듬앤드블루스(R&B)에다 솔을 황금 비율로 녹여 낸 음악은 절로 몸을 들썩이게 한다. 그 자체가 긍정의 힘이다.
인기 바람에 올라탄 리조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인생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고, MTV 비디오뮤직어워드(VMA)에서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연말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엔터테이너’로 선정됐다. 대학에서 플루트를 전공한 뒤 무명 가수이자 래퍼로 살았던 지난 10년의 세월이 보상을 받은 것이다.
리조의 인기를 두고 미국 젊은 세대의 문화가 변화하고 있다는 지표란 평이 나온다. ‘자기 몸 긍정주의’가 더 이상 ‘운동’이 아닌 ‘멋’ 그 자체가 됐다는 얘기다. 그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자기 몸 긍정주의는 애초에 뚱뚱한 신체를 옹호하는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이제 트렌디하고 상업적인 것이 됐다”고 말했다.
리조 스스로도 한술 더 뜬다. 앨범 커버에 자신의 누드 사진을 넣은 걸 두고 ‘자신감 넘친다’ ‘용감하다’는 칭찬을 건네도 정작 본인이 코웃음부터 친다. 그 또한 여성에 대한 이중잣대란 주장이다. “앤 해서웨이가 비키니를 입어도 용감하다 할 건가. 난 용감한 게 아니라 그저 나일 뿐이고 단지 섹시할 뿐이다. 내가 마른 체구의 여성이었다면 용감하다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남성의 시선에 맞춘 몸을 만들도록 조종당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리조가 비만을 정당화한다’는 역공에도 굴하지 않는다. 피트니스 전문가인 질리언 마이클스는 리조를 겨냥해 “비만이 심장병, 당뇨, 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우리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길”이라고 쏘아붙였다. 정치분석가인 보이스 왓킨스는 “리조가 인기 있는 건 비만이 미국에서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악담을 퍼붓기도 했다. 이에 리조는 “내가 인기 있는 건 좋은 곡을 쓰고 1시간 반 동안 에너지가 넘치는 공연을 하기 때문”이라며 “당신이나 잘하라”고 되받아쳤다.
전문가들은 리조가 제시하는 메시지뿐만 아니라 음악가로서 재능이 매우 뛰어나다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강일권 대중음악평론가는 “리조는 데뷔 때부터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던져 왔는데 그것이 최근의 트렌드와 맞아 떨어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라며 “뛰어난 가수이자 래퍼, 작곡ㆍ작사가인 동시에 프로듀서로서 역량까지 갖추고 있으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블랙뮤직의 과거와 현재를 해석해 보여준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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