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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위에 올린 사진 … 미국 서부에서 찍은 수묵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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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위에 올린 사진 … 미국 서부에서 찍은 수묵화 풍경

입력
2020.01.16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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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진 PKM갤러리서 사진전 

이정진, 2016, 'Opening 16', 76.5 x 145.5㎝. PKM갤러리 제공
이정진, 2016, 'Opening 16', 76.5 x 145.5㎝. PKM갤러리 제공

“문학으로 치면 ‘시’에 가깝게 작업하고 싶었습니다. 특정 장소와 시간을 보여주기보단 자연과 조우한 순간, 그때 제 느낌을 담아내는 것이 목적이었죠. 그래서 바위나 흙처럼 구체적인 형상이 찍혔다 해도 추상적인 시구 같은 것이라 생각해주세요.”

3월 5일까지 서울 삼청동 PKM갤러리에서 ‘오프닝(Opening)’, 그리고 ‘보이스(Voice)’ 시리즈를 선보이는 사진작가 이정진의 바람이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작가는 미국 서부 일대를 여행하며 그곳 자연을 사진에 담았다. 하지만 사진만 봐서는 이게 어딘지 짐작키 어렵다. 아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수묵화 같은 느낌이 강해서 미국 서부에서 찍은 사진이라기보다 오히려 우리네 어딘가에 가서 먹으로 그려낸 동양적 풍경에 더 가깝다.

이정진, 'Voice 15', 2019, 108.5 x 153㎝. PKM갤러리 제공
이정진, 'Voice 15', 2019, 108.5 x 153㎝. PKM갤러리 제공

쓰는 소재마저 한지다. 번지고 스며드는 한지의 특성 때문에 화가들도 다루기 어려워하는 소재를, 이정진은 과감하게 사진에 끌어들였다. 대단한 비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작가 스스로도 사진을 한지에다 인화하는 일을 두고 “미친 짓”이라 부를 정도로 까다롭다.

하지만 바닥에서부터 배어 나오는 한지만의 질감, 깊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작가는 “그런 면이 마음에 들어 한지를 고른 것이지, 한지를 고집하기 위해 부러 선택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흑백 사진을 고집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한지의 느낌은, 컬러보다는 흑백과 더 잘 어울렸다.

이런 작업은 서양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 끌었다.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2010년 프랑스의 사진작가 프레드릭 브레너가 이끄는 ‘디스 플레이스(This Place)’ 프로젝트에 참가하기도 했다.

이정진, 2016, 'Opening 13', 145.5 x 76.5㎝. PKM갤러리 제공
이정진, 2016, 'Opening 13', 145.5 x 76.5㎝. PKM갤러리 제공

동양인지 서양인지 헷갈리는 이 풍경은, 실은 미국 서부 중에서도 가장 황량하다는 뉴멕시코, 애리조나, 네바다 같은 곳이다. 애써 찾아가 고생해가며 찍었으니 작업량이 상당했을 것 같지만 의외로 빨리, 그리고 조금 찍고 말았다 했다. 한 장소에서 열 컷을 넘겨 찍지 않았고, 찍은 후에는 뭘 찍었는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더 적절한 빛을 기다리거나, 갔던 장소에 다시 되돌아가는 법도 없었다.

작가는 “대상이 나에게 말을 거는 그때가 오면 찍고 바로 넘어갔다”며 “다시 거기를 간다 해도 똑같은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라 말했다. 그저 자신과 자연과의 만남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했다. 그래서 작가는 이 작품들이 “내 개인적인 만남을 담은 일기장 같은 것”이라 했다.

이정진 사진작가, PKM 갤러리 제공, 사진 노바울
이정진 사진작가, PKM 갤러리 제공, 사진 노바울

늘 그렇듯,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바람을 빗겨간다. 사진을 보여줬더니 사람들마다,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작가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했다. 자신만의 개인적 감성을 담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다른 사람들의 감성과도 비슷하다는 얘기라서다. 작가는 “제 작업이 지금 인간의 보편적 감정, 본질적인 감정을 다룰 수 있음을 깨우쳐줘 감사하다”며 웃었다.

이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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