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015년 롯데 경영권 분쟁 때 경영자문 계약서 입수
관세청 점수 조작에 롯데 탈락… 롯데 노조, 민유성 檢 고발
자문료 182억 받은 민유성 추가지급 소송 “로비 없었다” 주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롯데홀딩스 전 부회장의 2015년 경영권 분쟁 당시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이 신 전 부회장과 체결한 경영자문 계약서에 ‘면세점 면허 갱신 방해(Interrupted Duty Free License Renewal)’가 구체적인 자문 성과로 명시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호텔이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심사에서 탈락하자 민 전 행장이 이를 자신의 대외활동이 반영된 성과로 내세운 것이다. 롯데그룹 안팎에선 당시 민 전 행장에게 거액의 자문료가 지급됐고 관세청의 평가점수 조작으로 롯데가 부당하게 탈락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민 전 행장이 정상적 자문활동을 넘어 정ㆍ관계 인사들을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를 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2015년 11월 30일자 ‘프로젝트 L-변경자문계약’에 따르면 민 전 행장은 신 전 부회장과 계약 체결 후 ‘지금까지의 진행사항’ 항목에 ‘면세점 면허 갱신 방해’를 성과로 기재했다. 민 전 행장은 2015년 9월 15일 신동빈 회장에게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고 롯데의 주요 사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신 전 부회장과 ‘프로젝트 L’이라고 명명된 경영자문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롯데가 11월 14일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심사에서 탈락하는 등 신 전 부회장에게 유리한 국면이 조성되자, 민 전 행장의 제안으로 계약조건을 변경했다.
변경계약서에는 ‘다수의 언론 홍보, 소송 대응, 광범위한 내부 리서치를 통해, 프로젝트 개시일 이후 상당한 성과가 도출되었음’이라고 명시했다. 국문과 영문으로 각각 8페이지로 작성된 계약서에는 ‘신동빈, 쓰쿠다(롯데홀딩스 사장), 고바야시(롯데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의 쿠데타 행위를 밝힘’, ‘롯데호텔 34층(신격호 명예회장 집무실)을 성공적으로 장악’, ‘여러 건의 소송제기’, ‘신동주에 대한 대중의 인식 향상’ 등도 민 전 행장의 주요 성과로 명시됐다.
계약서에는 신 전 부회장이 민 전 행장에게 지급할 비용과 지급방식도 기재돼 있다. 기본적인 보수와 비용으로 150억원을 지급하고 프로젝트가 성공할 경우 100억원을 추가로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 장악에 실패하자, 두 사람은 자문료 지급액을 두고 이견이 생겨 법적 분쟁에 돌입했다. 민 전 행장은 ‘프로젝트 L’ 계약을 통해 신 전 부회장으로부터 모두 182억원의 자문료를 받았지만, 108억원을 추가로 받아내려고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일부 승소했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1심 재판부의 변론조서 내용도 ‘프로젝트 L’ 계약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민 전 행장은 지난해 1월 25일 법원에 출석해 “롯데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롯데타워 잠실면세점의 특허 재취득이었는데, 우리는 그 부분을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민 전 행장은 “잠실롯데 면세점이 중요한 이유는 롯데호텔은 80% 이상의 매출이 면세점에서 나온다. 신동빈 입장에서는 롯데호텔 상장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였고, 굉장히 중요한 이슈였기 때문에 일단 그 부분을 저지해야 된다”라고 강조했다.
민 전 행장은 롯데타워 잠실면세점 특허 심사 탈락을 유도한 구체적인 방법도 설명했다. 그는 “(탈락) 결정이 있기 전인 (2015년) 10월 8일 저희가 조선호텔에서 상당히 큰 규모로 기자회견을 한다. 거기에서 신동빈에 의한 경영권 찬탈의 부당성, 한국ㆍ일본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불투명성, 신동빈의 경영 비리, 이런 부분들의 일부를 확실하게 발표했고, 그래서 경영권 분쟁이 확실히 시장에 각인되면서 롯데타워 면세점 특허의 재취득이 불가능해졌다”고 진술했다. 신 회장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지속적으로 전파해 면세점 사업 방해에 성공했다는 논리였다. 실제로 신 전 부회장은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부친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이 자신을 지지하는 의사를 밝힌 위임장과 영상을 공개하며 신동빈 회장을 공격했다.
하지만 롯데그룹 노동조합협의회 측은 민 전 행장 주장대로 기자회견이 면세점 심사 탈락의 직접 원인이 됐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롯데의 경영권 분쟁은 당시 국정감사에서 이슈가 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충분히 각인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기자회견 내용이 특별히 새로운 게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관세청에 대한 감사원 감사결과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돼야 할 롯데가 부당하게 탈락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정치권과 관세청 고위인사가 심사과정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 전 행장이 경영권 분쟁 당시 롯데의 면세점 탈락을 자신의 성과로 내세운 점도 막후 로비 의혹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민 전 행장은 현재 알선수재와 변호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발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감사원의 2017년 7월 감사결과에 따르면 관세청은 2015년 11월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권이 만료되는 사업장 심사에서 영업이익 대비 기부금 비율, 매장규모 적정성 등 2개 계량항목 평가점수를 부당하게 산정해 심사위원에 제공했다. 이에 따라 롯데호텔은 원래 받았어야 할 점수보다 191점 적게, 두산은 48점을 적게 받아 결국 롯데가 탈락했다.
관세청은 2016년 9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기업들이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보내라는 요구를 받자, 서류를 갖고 있지 않다고 답변한 뒤 실제 갖고 있던 서류를 업체에 반환하거나 파기한 사실도 드러났다. 감사원은 사업계획서 파기를 지시한 천홍욱 당시 관세청장을 공공물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천 전 청장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 입김으로 청장에 임명됐으며, 취임 직후 최씨를 만나 “실망시키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민 전 행장은 그러나 정ㆍ관계 로비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롯데의 면세점 갱신에 대해 방해한 일이 없고, 당시 그쪽(신동빈 회장)이 뭘 잘못했는지 공론화했을 뿐이다. 검찰이 조사해서 처리할 문제라 더 이상 언급하기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민 전 행장은 “면세점 갱신을 방해하려면 관세청과 얘기하고, 롯데호텔 상장을 방해하려면 증권거래소와 얘기하든지 그랬어야 될 것 아니냐.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며 “우리는 어디 가서 로비 같은 것 전혀 없이 정정당당하게 활동했지, 치사한 방법으로 한 게 없다”고 밝혔다.
한국일보는 신동주 전 부회장 측에 민 전 행장의 자문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있는지 물었지만 “재판 중인 사안이라 답변하기 곤란하다”고 알려왔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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