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천문’은 각색 실화로 역사적 인물의 기본적인 정보만 골격으로 유지한 채 작가의 상상력을 더하여 세종과 장영실의 계급을 초월한 우정을 다룬다. 그 한편에는 한글 창제에 대한 상상력도 부록처럼 들어가 있다.
학계의 한글 창제 이론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친제설’은 세종이 홀로 만들었다는 주장이고, ‘친제협찬설’은 세종이 주도했으되 집현전 학자들의 보필을 받았으리라는 주장인데 세종이 한글 창제에 핵심 역할을 한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친제설은 세종실록과 같은 사료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친제협찬설은 당시의 상황을 고려한 추론이므로 모두 나름대로의 근거를 갖추고 있다. 한편 학계가 지지하는 학설이 무엇이든 대중의 정서는 세종의 위대함과 한글 창제에 깃든 애민 정신을 기리며 존경심과 애정을 아끼지 않는다.
‘천문’은 친제설을 따른다. 밤중에 세종이 장영실을 불러 두 사람의 이름을 한글로 써주는 장면이 있다. 이때 둘의 관계가 매우 돈독하던 시절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세종은 최소 몇 년에 걸쳐서 혼자 한글을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 조선의 왕은 사생활이란 것이 없어서 영화에서처럼 침전에 들고서야 연구할 수 있다. 세종이 신하들 몰래 한글을 만들자면 새벽부터 밤까지 빈틈없이 꽉 짜인 일정을 소화한 후 수면시간을 쪼개야 한다. 그만큼 친제설엔 세종이 한글 창제에 초인적인 의지와 실천력으로 임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면 그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
영화 속 세종의 왼쪽 눈이 빨갛다. 당시 세종은 쌓이는 과로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영화는 비록 허구이지만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한글을 만들면서 지새운 세종의 밤은 어떠했을 것인가. 장영실은 세종의 밤을 알고 있었을까.
강미영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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