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룸’ 저자 수전 팔루디 이메일 인터뷰
스티븐 팔루디. 전형적인 아버지, 전형적인 폭군이었다. 온 가족은 그가 먹으라는 대로 먹고, 입으라는 대로 입어야만 했다. 생활비에 보탬이라도 될까 싶어 어머니가 일거리를 알아보겠다 하자 식탁을 뒤엎기도 했다. 불화가 이어지자 아버지는 1977년 이혼 뒤 집을 나갔다. 27년 만인 2004년 다시 만난 폭군 아버지는 변해 있었다. 빨간 스커트에 하이힐까지 맞춰 신은 ‘여자’가 되어 있었다. 이름마저 ‘스테파니 팔루디’였다.
페미니즘의 고전 ‘백래쉬(Backlash)’ 저자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수전 팔루디(60)가 그 딸이다. 딸은 아버지의 기이한 선택이 궁금했다. 70대에 들어서야 성전환 수술을 받고 비로소 행복했다던 아버지는, 제 아무리 가부장 폭군인 척, 센 척 해봐야 결국 평생을 어두운 방에서 홀로 지낸 사람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굴곡진 삶을 추적한 책 ‘다크룸(In the Darkroom)’이 탄생한 배경이다. 책에서 수전은 아버지의 선택을 둘러싼 정치사회적 변동을 함께 그려낸다. ‘다크룸’ 한국어 번역본 출간을 맞아 수전과 이메일로 만났다.
-아버지가 여자가 됐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어땠나.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전형적인 마초였다. 암벽이나 빙벽 등반처럼 위험한 운동을 즐기면서 자신의 호전성을 과시했다. 여자는 나약하다는 식의 여성 혐오 발언도 일삼았다. 그랬던 아버지가 여자가 됐다고 하던 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더 큰 감정은 슬픔이었다. 오랫동안 자신을 숨겨야 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다. 가족조차 우리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던 셈이다.”
-아버지는 왜 뒤늦게 여성으로 살고자 했을까.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묻고 또 물었던 질문이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다 클 때까지 기다렸다고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아버지 스스로도 그 선택이 어렵고 두렵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평생 외부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정체성과 싸우다, 마침내 어둠의 방에서 나와 진짜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자고 결심한 것이다.”
아버지의 삶 자체가 그랬다. 1928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던 아버지의 원래 이름은 이슈트반 프리드만. 하지만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피하기 위해 가장 헝가리스러운 ‘팔루디’로 성을 바꿨다. 그렇게 살아 남아 미국으로 건너온 아버지는, 또 한 번 미국의 백인 남성 세계에 편입되고자 이번엔 ‘스티븐’으로 변신했다. 거친 운동을 즐기는 정상가족의 가부장으로 살고자 했다.
하지만 ‘스티븐’ 그리고 ‘팔루디’의 삶은 이혼으로 끝났다. 고향 헝가리로 다시 건너간 아버지는 2004년 ‘스테파니’로 변신했고 11년간 행복하게 살다 2015년 생을 마감했다. 역사가,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가면을 뒤집어 쓴 채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다 떠난 것이다.
-아버지의 삶은 정체성을 향한 투쟁이었다.
“아버지를 통해 정체성이란 무엇인지 고민했다. 우리는 정체성을 견고하고 단일하다 착각하지만, 그건 시간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바뀔 수 있다. 그 정체성은 개인의 문제만도 아니다. 아버지를 구성한 정체성이란 그가 살았던 곳의 역사, 이념, 정치체계 등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여러 힘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정체성은 그 상황에 따라 자신을 드러낼 수도, 감출 수도 있는 야누스의 얼굴이다.”
-네오파시즘의 ‘정체성 정치’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버지를 만나러 헝가리에 갔을 때 그곳엔 우파가 대세였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사회 경제적 위기가 높아지자 국가와 민족 정체성에 대한 허황된 이야기들을 지어냈다. 소수 민족, 이민자, 여성 등을 내치고 억압하기 위해서였다. 정체성을 앞세워 이득을 보는 우파 정치 세력과 독재자들이 구사하는 전략이 ‘정체성 정치’다. 헝가리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어 우려스럽다.”
수전 아버지의 정체성은 무엇이었을까. 유대교도인가 기독교도인가, 헝가리인인가 미국인인가, 여자인가 남자인가. 아버지의 삶을 좇다 딸이 도달한 결론은 그런 이분법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기이한 인생을 좇은 끝에 내린 결론은 하나다. “이 우주에 단 하나의 구분, 단 하나의 이분법이 있다면 그것은 삶과 죽음일 뿐, 다른 모든 구분은 그저 녹아 사라질 뿐”이라는 것.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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