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품ㆍ에너지ㆍ농산물ㆍ서비스 등 4개 부문서
트럼프 “상전벽해 변화… 2단계 타결되면 관세 철회”
지적재산권, 기술 이전, 보조금 등 불씨 여전
미국과 중국이 15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1단계 무역합의 서명식을 가졌다. 2018년 7월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대한 첫 ‘관세폭탄’으로 무역전쟁의 포문을 연 지 18개월만에 공식 휴전에 들어간 것이다. 본격화하기 시작한 미국 대선 레이스를 의식해 양국이 긴장 완화의 첫 발을 떼긴 했지만, 핵심 쟁점들은 미뤄뒀고 분쟁의 불씨도 남아 있어 양국간 줄다리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류허(劉學) 중국 부총리는 이날 오전 11시30분 백악관에서 96쪽에 이르는 1단계 무역합의문에 서명했다. 두 사람은 서명식 후 오찬을 함께 함으로써 양국 간 화해ㆍ협력을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합의에 대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라며 “국제 무역에서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단계 협상을 곧바로 시작할 것이라며 2단계 협상이 타결되면 대중 관세를 모두 철회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2단계 협상으로 미중 무역전쟁을 마무리하겠다는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류허 부총리가 대독한 서한에서 “이번 합의는 중국과 미국, 전 세계에 유익하다”며 “양측은 더 큰 진전을 위해 무역 협정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1단계 합의의 핵심은 중국이 4개 부문에서 앞으로 2년간 2,000억달러(약 231조7,000억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을 추가 구매하는 내용이다. 2017년 미중 무역규모를 기준으로 중국이 공산품 777억달러, 에너지 524억달러, 농산물 320억달러, 서비스 379억달러 등을 더 구매하는 내용의 합의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공산품 구매 목록에는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항공기, 농기계, 의료장비, 반도체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미국은 당초 지난해 12월 15일부터 부과할 예정이던 1,6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관세를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또 기존에 15%를 부과한 1,200억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의 관세를 7.5%로 줄일 방침이다. 다만 무역전쟁 초반에 중국 제품 2,500억달러어치에 부과했던 25% 고율관세는 유지한다. 이번 합의에는 중국이 구매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미국이 일방적으로 관세를 재부과할 수 있는 ‘이행강제 메커니즘’도 포함됐다.
미중 양국은 1단계 합의에서 핵심쟁점인 지식재산권 보호와 기술이전 강요 금지 등도 다뤘지만, 중국의 약속이 포괄적이고 모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과거에도 지재권 보호 강화와 기술이전 강요 금지를 약속했지만, 미국은 중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불만을 표출해왔다. 중국 국영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사이버안보 등 다른 쟁점들도 2단계 합의 과제로 미뤄졌다.
미국으로선 이번 합의의 최대 성과가 중국의 2,000억달러어치 추가 구매 약속이다. 2018년 기준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 규모(4,192억달러)를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대선 과정에서 대대적인 홍보 포인트를 잡은 셈이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계획대로 이행되려면 중국 기업들이 기존 공급선을 급작스럽게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다. 현실적으로 목표액 달성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CNBC는 전문가를 인용해 “중국이 목표액을 달성하려면 미국산 제품을 ‘미친 듯이’ 구매해야 한다”며 “올해 안에 1단계 합의가 유지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재부과 위협 카드를 꺼내면서 양국 간 마찰이 재연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비관적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이날 CNBC 인터뷰에서 “2단계 무역협상에서 양국 무역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기술 및 사이버안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중국이 원하면 이 협정은 작동할 것이다”며 합의 성공 여부는 중국의 이행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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