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민정수석실은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가진 조직으로 각인돼 있다. 그러나 주요 선진국에서는 대통령(또는 총리)을 보좌하는 참모가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국가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된 우리나라와 달리 권력이 여러 정부기관에 분산돼 있기 때문이다.
독일은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어 구조적으로 권한이 한 곳에 집중되기 어렵다. 총리를 보좌하는 연방수상실이 산하기관을 감독ㆍ지시하는 상위기관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상과 연방부처, 그리고 주정부 사이에서 조정 역할을 할 뿐이다. 연방수상실 내에 언론대응 기능을 두고 있으나 폭넓은 여론수렴 기능은 각 국ㆍ실별로 분산시켰다. 반부패 및 공직기강 업무는 주정부의 법무부 소관이다. 특히 연방수상실의 구체적 기능이 연방정부가 매년 발표하는 연방예산계획에 명시돼 권한 남용 가능성을 차단했다. 이재윤 독일 변호사는 “연방수상실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에서 수평적 소통업무를 맡을 뿐 우리나라 민정수석실처럼 산하기관을 통제하는 기능이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담당하는 핵심업무를 미국에선 백악관 안팎의 여러 부처에 분산시켜 처리한다. 백악관 비서실은 대통령의 각종 업무를 보조하는 순수 참모조직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민정수석실의 반부패 및 공직기강 업무는 백악관 밖의 법무부, 의회 소속 회계감사원, 각 부서의 감찰반이 담당한다. 청와대의 법무비서관 같은 역할은 각 부처에 포진한 법률 자문관들이 수행한다. 인사검증만 하더라도 연방수사국(FBI)과 정부윤리실 등 국가기구가 법률에 따라 주어진 대상에만 작업한다. 다만 여론수렴 업무는 백악관 내의 공공연락사무소와 디지털전략실 같은 부서가 나눠서 수행한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권력 분산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 미국에선 권력 핵심과 관련된 업무를 하나의 부서로 집중하지 않는다”며 “특히 반부패ㆍ공직기강 기능은 백악관 밖의 감시 부서가 담당하는 게 철칙”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 수반이 참모그룹을 구성할 때 폭넓은 자율권을 갖는다는 점은 우리와 유사하다. 백악관 비서실은 조직을 편성할 때 한국의 대통령 비서실과 마찬가지로 의회 동의가 필요 없으며, 행정명령에 근거해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국은 백악관 비서실과 다른 부처간의 관계를 수직적으로 보지 않는다”며 “대통령의 업무 재량권을 보장하기 위해 유연하게 접근하도록 열어둔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도 연방 기본법 제65조에서 “연방수상은 정책의 방침을 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만 규정해 연방수상실의 설치 근거만 두고 있다. 수상실 내부의 세밀한 역할분담은 법률에 규정하는 대신 자율에 맡긴다는 취지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김민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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