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불신 속 개혁 추진, 반발 무마 책임
주변 親文 검사들, 尹 총장 패싱할 수도
평검사처럼 칼 모두 빼 휘두른 총장 업보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불공정한 ‘선택적 수사’, 절제하지 못한 ‘수사권 행사’,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몰이’ 등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그런 행위로는 “국민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윤석열 검찰에 불신을 드러냈다.
예전 같으면 총장이 즉각 사표를 낼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검찰 기수 파괴 인사와 대통령의 불신임 발언에 김각영 총장이 사표를 냈고, 2005년 김종빈 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불구속 수사지휘에 항의해 사퇴했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 때는 김준규 총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발해 옷을 벗었다. 이들의 사퇴에는 공통적으로 검찰 개혁으로 기득권을 잃게 된 검사들의 노골적이고 조직적인 반발이 작용했다.
반면 윤 총장은 임기를 채운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순탄치 않을 것같다. 권력의 견제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윤석열 사단’으로 불리던 측근 참모들을 모두 잃었다. 향후 인사에서 후배 검사들이 더 중용되고 윤 총장 라인들이 또 ‘물’을 먹으면 그들은 옷을 벗을 수밖에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진보집권플랜’에서 언급한 대로 인사권을 통한 검찰 내 주류 물갈이가 이뤄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 총장은 검찰 개혁은 개혁대로 추진해야 한다. 지금의 윤석열을 있게 한 반부패수사부(특별수사부) 등 직접 수사 부서를 ‘직접’ 잘라내야 한다. 분신 같은 수하도 잃고, 조직도 쪼그라든 마당에 7월부터는 공수처의 견제를 받게 된다. 경찰 수사지휘권 폐지에 따른 검사들의 반발과 불만도 잠재우며 새로운 검경 관계도 구축해야 한다. 임기를 채워 가는 하루하루가 고통의 나날일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은 검사로서 할 일을 다했을 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맞다. 하지만 ‘검사 윤석열’은 뛰어났지만 ‘검찰총장 윤석열’로서 직책이 요구하는 소임을 다했는지는 모르겠다. 취임 후 조국 수사를 보면 그는 ‘검찰총장 = 검사들의 맏형’이라는 인식이 확고한 듯하다. 틀리진 않지만 100% 맞는 것은 아니다. 검찰총장은 검사와 달라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윤 총장은 일선 수사 검사 역할에 더 충실한 총장처럼 비쳤다.
검사는 사건을 접하면 전력투구를 한다. 갖고 있는 칼을 전부 휘두르려 한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조직 수장인 검찰총장이 그에 동조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대통령이 임명했으니 권력 눈치를 보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검찰총장이라면 칼집에서 칼을 70%만 빼고도 수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윤 총장이 사려 깊었다면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직전에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이고 인사청문회 당일 부인을 전격 기소해 대통령의 인사권과 후보자에 의도적으로 상처를 내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윤 총장의 패착은 거기서 시작됐다.
수사 과정과 수사 결과에서도 ‘검찰총장 윤석열’은 보이지 않았다. 4개월 넘게 4개 반부패수사부를 총동원한 것치고는 결과가 빈약하다는 지적이 무리가 아니다. 반복적인 압수수색과 무차별 소환 조사, 감찰 무마 의혹 등 별건 수사 행태는 검찰 특수수사의 고질이자 폐해로 누차 지적돼 왔는데도 윤 총장은 절제와 자제는커녕 “내가 다 책임진다”며 진두지휘에 나섰다. 환부만 도려내는 외과 수술 같은 정밀한 수사에 대한 오랜 묵계는 여지없이 깨졌다.
검찰총장 윤석열이 어떤 길을 갈지 예상하긴 어렵다. 하지만 검찰이 오랜 기간 극렬히 반대해 온 공수처 설치, 수사권 조정에다 분신 같은 반부패수사 축소까지, 윤 총장은 ‘뼛속까지 검찰주의자’임에도 검찰 기득권의 뼈와 살을 직접 자신이 발라내야 하는 입장이 됐다. 그것을 막으려고 조국 수사에 뛰어든 것인지는 모르나 분명한 건 그로 인해 자신도, 그토록 사랑한다는 검찰도 심각한 내상을 입게 됐다는 점이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그가 처음 보고받은 조국 비리는 어떤 내용이었는가. 그 보고 내용과 수사 결과는 얼마나 일치하는가.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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