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은 ‘사고 파는 것’이기 전에 ‘삶을 사는 곳’입니다. 집에 맞춘 삶을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에, 또한 사람에 맞춰 지은 전국의 집을 찾아 소개하는 기획을 수요일 격주로 <한국일보> 에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신혼집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삶을 맞추는 공간이다. 한옥에서 나고 자란 남편 여병희(38)씨와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아내 이소영(32)씨는 1년여 전 서울 북촌의 조그마한 한옥(건축면적 75㎡)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여씨가 살던 한옥을 둘의 취향에 맞게 현대적으로 고친 ‘하이브리드 한옥’이다.
처음에는 한옥이 불편하다며 반대했던 아내는 “생활의 불편은 줄이고 잘 꾸민 현대적인 한옥들을 보고 생각을 바꾸게 됐다”고 했다. 80년 된 낡은 한옥을 1년간의 대대적 공사 끝에 2018년 8월 현대적인 한옥 ‘하연재(夏燕齎)’, 곧 ‘여름에 제비가 오는 집’으로 다시 태어나게 했다.
◇현대 가구로 꾸민 도시형 한옥
1980년대 여씨의 부모가 매입해 가족이 함께 살아온 한옥은 1940년대 지어진 도시형 한옥이었다. 당시 도시형 한옥들은 ‘ㄷ’자형으로 마당을 감싸 안은 구조로 안채에 담장이 붙은 일체형이었다. 내부는 벽돌, 유리, 함석 등 근대 건축 재료를 활용했다. 하지만 좁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증축과 개조를 거듭하다 보니 본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공간을 넓히기 위해 암반 구조의 경사 지형을 이용해 지하층을 만들었고, 아스팔트 지붕을 기와 위에 덮었다. 내부에는 지붕을 지지하기 위한 철골 구조를 끼워 넣었다. 마당도 덮어 거실로 썼다. 설계와 시공을 맡은 이문호 건축가(가은앤파트너스 소장)는 “한옥처럼 보이는 한옥 아닌 한옥이었다”라며 “목재와 기와, 창호 등 한식 재료를 활용해 지붕, 담장, 마당 등 한옥의 기본 요소를 되살리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외벽을 두르고 있던 빨간 벽돌을 걷어 내고 한국식 담장을 만들었다. 사고석(화강암)을 대고 전벽돌을 쌓아 올리고, 와편(기왓장)을 붙였다. 아스팔트 지붕을 걷어 내고 기와 지붕을 드러냈다. 기와 지붕으로 둘러쌓인 ‘ㅁ’ 자형 마당도 비로소 얼굴을 찾았다. 마당에는 생활 편의를 위해 현대 타일을 깔았다.
알루미늄 창호 대신 목재 창호를 썼다. 내부 철골을 들어 내고 소나무 기둥과 대들보, 서까래를 보강했다. 다락을 없애고 지하는 막았다. 부부의 신혼집 아래의 사실상 1층인 지하층은 여씨의 어머니가 거주한다.
오각형 대지에 틈 없이 빼곡했던 집은 ‘ㄷ’ 자형으로 줄어들면서 마당과 뜰이 생겼다. 지하와 지층도 분리됐다. 이 소장은 “전통 한옥과 달리 도시형 한옥은 재료나 구조 변경이 보다 자유롭다”라며 “2층 한옥도 있고, 지하가 딸린 한옥도 있어서 전통 한옥만 떠올리는 사람들에게는 반감이 있을 순 있지만 최근에는 상업공간이나 사무공간으로 한옥을 활용하는 등 한옥도 시대에 맞게 재해석되고 있다”고 말했다.
내부는 부부의 요구를 반영해 현대식으로 고쳤다. 부부는 건축가에게 △좁은 공간을 넓게 쓸 수 있는 모듈형(가변) 공간으로 만들어 줄 것 △부부 각자의 동선을 만들어줄 것 △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전통한옥의 ‘차경(借景ㆍ경치를 빌리다)’을 즐길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청을 중심으로 주방과 침실이 좌우에 있다. 주방과는 트여 있고, 침실은 자유롭게 접고 펼 수 있는 불발기문(가운데 창을 내 채광이 되도록 한 한식 문)으로 분리했다. ‘ㄷ’ 자형의 양 날개는 패션 관련 일을 하며 출근 시간이 같은 부부 각자의 화장실과 옷방이 배치됐다. 화장실과 옷방은 창호를 바른 슬라이딩 도어를 달았다. 양 날개의 끝에는 다용도실과 서재(작업실)를 두되 문을 달지 않아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많은 공간인 주방과 대청, 침실을 일직선상에 뒀다. 침실에서나 대청에서 주방의 창을 통해 시시각각 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인왕산을 볼 수 있다.
집 안 곳곳에 둔 현대 디자인 가구들도 한옥과 조화를 이룬다. 대청에는 덴마크 디자인 회사 프리츠 한센의 식탁과 의자가 있다. 체코 톤사의 의자, 스위스 USM 모듈 가구, 덴마크 뱅앤올룹슨 스피커 등이 한옥의 목재, 한지 등과 멋스럽게 어우러진다. 유럽 디자인 가구뿐 아니라 수묵화와 노리개, 자개 보석함 등 한국 전통 소품들도 공간의 특색을 보여 준다. 부부는 “서양 패션이나 예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한옥에 살면서 한국 전통의 미를 볼 수 있는 ‘한식 미감’이 생긴 것 같다”라며 “K팝처럼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디자인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 말했다.
◇손 많이 가도 예뻐서 살맛 나는 집
한옥은 손이 많이 간다. 비가 오면 회벽에 빗물의 때가 묻지 않도록 비닐을 둘러쳐야 한다. 빗물이 들이치니 쪽마루 아래로 신발을 넣어야 한다. 외풍이 강한 겨울에는 창에 비닐을 덧대야 한다. 마당과 뜰 같은 외부 공간이 많아 청소도 번거롭다. 벌레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부부는 “한옥은 고치는 데도 손이 많이 가지만, 살면서도 번거로운 일이 적지 않다”고 충고했다.
특히 부부의 한옥이 위치한 북촌은 관광객들이 수시로 대문을 두드리고, 대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상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원주민들은 집을 팔고 떠났다. 주차장이나 세탁소, 편의점, 버스정류장 등 편의시설도 부족하다. 부부는 “주변이 관광지다 보니 소음도 많고, 청와대 주변이어서 집회가 있는 날이면 통행에도 제한이 생긴다”고 말했다.
살기엔 불편할지 몰라도 보기엔 만족스럽다. 부부는 “불편한 것들이 상쇄될 만큼 눈길 가는 곳마다 예쁘다”고 했다. 서까래와 대들보의 자연스러운 무늬와 은은한 문살, 새하얀 창호지와 정갈한 회색 기왓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소소한 수고로움은 이내 잊힌다. 마당 한편에 걸린 빗자루마저 그들에겐 소중하다. 패셔니스타인 부부는 “흔히 껍데기보다 알맹이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껍데기가 엄청 중요하다”라며 “집이 예뻐서 살맛 난다”고 웃었다.
삶에 맞춰 집을 지었지만 집에 살면서 삶도 달라졌다. 100켤레가 넘는 신발과 수백 가지의 옷과 가방을 갖고 있던 이들은 한옥으로 이사하면서 절반가량을 정리했다. 2,000여권이 넘던 책도 처분하고, 동네 도서관을 이용한다. 주말이면 동네 도서관, 갤러리 등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한옥을 매개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교류도 하게 됐다. 옷보다 그림이나 소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부부는 “집은 우리만의 삶의 풍경을 그려 내는 하얀 도화지 같다”라며 “굳이 한옥과 양옥, 동서양이나 신구의 조화를 생각하기보다 우리만의 취향과 감각으로 꾸미면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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