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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우 칼럼] 서커스가 끝난 뒤의 남북교류

입력
2020.01.21 18:00
수정
2020.01.21 18:0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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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에 부딪힌 상상력의 대북정책

비현실적 구상으로 국제신뢰 하락

상식의 힘으로 평화의 공감대 회복해야

북한관광허용 조치는 시작도 하기 전에 불협화음부터 났다. 미국 대부분 언론이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 사진을 싣고 그의 일본혈통과 한국의 인종주의를 다뤘다. 남북교류추진의 이유를 다룬 기사는 없다. 이게 정부 대북라인 상상력의 실체다. 사진은 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문재인 대통령이 환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관광허용 조치는 시작도 하기 전에 불협화음부터 났다. 미국 대부분 언론이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 사진을 싣고 그의 일본혈통과 한국의 인종주의를 다뤘다. 남북교류추진의 이유를 다룬 기사는 없다. 이게 정부 대북라인 상상력의 실체다. 사진은 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 만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문재인 대통령이 환한 미소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 개별관광에 대한 통일부 발표 내용을 보고 고작 이거야? 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고 조선총독이란 말까지 소환해 논쟁을 벌일 정도면 더 준비가 된 규모 있는 정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실현 가능성은 한참 뒤에 알 것 같다. 북한 호응이 있어야 하는데 물밑 논의가 있었던 흔적도 없다. 한마디로 실무단계 구상이다.

성사가 된다면 상당한 의미가 있다. 미국이 공감하고 북한이 신변안전 등 조치를 취한 상태에서 우리 관광객을 받아들일 경우 작은 국면 전환이다. 사실 남북교류 역사는 접촉의 면을 한 단계씩 넓혀 나가고, 중단하면 바로 다시 교류의 재개방안을 준비하기를 반복하는 게 기본구도다. 쉴새없이 달린 적은 없다. 이 방식이 기능주의를 바탕으로 고안되고 오랫동안 추진한 대북포용정책, 다시 말해 햇볕정책의 주류다.

그래도 이 조치가 초라해 보이는 건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보여 준 그림이 너무 화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턴가 점진적인 대북정책은 너무 ‘상식적인 것’이고, 냉전시대의 관성으로 비유되기까지 했다.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담대한 상상력’을 강조해 왔다.

그동안 상상한 결과물을 떠올려보자. 1년여 전까지 ‘대동강변의 트럼프 타워’ ‘평양역 맥도날드’는 고위당국자들의 단골 메뉴였다. 폐기된 핵시설은 해체해 미 오크리지의 원자력연구소로 가져온다고 했다. ‘진달래가 핀 영변 핵시설 앞에서 한국 미국 북한 정상이 찍는 기념사진’ ‘원산이나 흥남에 입항하는 미 항공모함’ 등의 광경이 말이나 글로 나온 게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2032년 남북올림픽 유치란 꿈도 기회있을 때마다 소개된다.

현실적인 핵협상의 쟁점들은 이 그림 뒤에 묻혔다. 김연철 통일부장관은 취임 전인 2018년 칼럼에서 “복잡한 (비핵화의) 설계도는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담대한 상상력”이라면서 “머릿속의 38선을 뛰어넘을 것”을 촉구했다. 상상력에 의한 평화프로세스는 그래서 디테일은 없고, 비주얼만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기어코 판문점에서 깜짝 회담을 했을 때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의) 파격적인 제안과 (김정은의) 과감한 호응은 상식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이라며 “상상력이 세계를 놀라게 했고, 감동시켰으며, 역사를 진전시킬 힘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전례 없는 톱다운식 핵해결을 상상하는 근거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벌이는 협상이란 단순한 이유다. 한계가 보이기 시작한 뒤에도 정부는 참 오랫동안 같은 방식에 의존했다. 김 위원장은 더 이상 상상의 대상이 되고 싶지 않다는 점을 여러 번 밝혔다. 트럼프를 추동해 온 세계의 감동도 사라졌다. 적어도 두 번째 판문점 회담부터 감동은 없다. 서커스는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똑같이 반복되어 보여지는 기술은 관중들에게 더 이상 이미 묘기가 아니다. 이제는 우리의 현실인식, 민주적 가치와 인권 의식, 나아가 신뢰도를 의심받는 지경이다.

가령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관계자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올림픽 공동개최 구상을 언급하며 “문 대통령은 북한을 인식할 때는 다른 꿈나라 (la la land)에 산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서커스는 볼 때 놀라지만 나올 때 돈 생각이 난다”고 꼬집었다. 북한관광허용 조치는 시작도 하기 전에 불협화음부터 났다. 미국 대부분 언론이 해리스 대사의 콧수염 사진을 싣고 그의 일본혈통과 한국의 인종주의를 다뤘다. 남북교류추진의 이유를 다룬 기사는 없다. 이게 정부 대북라인 상상력의 실체다.

다시 상식의 가치로 돌아갈 때가 됐다. 곧 냉혹한 디테일이 몰려온다. 한반도의 현실은 있는 그대로도 극적이다.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 연평해전이 벌어졌을 때 금강산 관광은 계속됐다. 비난이 빗발칠 때 청와대 고위당국자의 말이 생각난다. “햇볕정책은 사상 최대규모의 대북공작이다.” 반민중적이며 호전적인 정권이기 때문에 변하게 해야 한다. 누구나 아는 이 점을 받아들이는 게 국면타개의 출발이다.

유승우 뉴욕주립 코틀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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