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식사는 ‘뉴스’다. 하루 세끼 먹는 식사가 대통령이라고 다를 리 없으니 그의 모든 끼니가 뉴스가 될 리 없다. 다만, 대통령이 누구와 어디서, 어떤 메뉴로 밥을 먹느냐에 따라 사진이나 영상의 공개 여부가 결정되고, 그 정치적 의도와 메시지 또한 달리 읽히곤 한다.
대통령의 식사 장면이 21일 공개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에서 신임 공무원들과 점심식사를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공직자들이 자신을 전부 바쳐야 한다거나 희생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최대한 열심히 하되 충분한 휴식과 자유시간을 갖고 일과 가정을 양립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 발언에 식판을 들고 배식을 받는 사진과 영상이 겹쳐지면서 평범한 직장인의 정서에 한발 다가가려는 대통령의 의지가 엿보일 가능성이 높다.
외국 방문에 나선 대통령이 일반 국민들이 자주 찾는 식당을 찾아 화제가 되기도 한다. 2016년 5월 24일 베트남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수행원들과 함께 하노이의 한 서민 식당을 찾았다. 현지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자연스럽게 쌀국수와 맥주를 마시는 사진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초강대국의 소탈한 대통령 이미지가 전세계에 각인됐다. 이날의 ‘분짜 식사’가 베트남 국민의 민심을 사로잡는 계기가 되면서 가장 성공적인 대통령의 식사 정치로 기록된 것은 물론이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1월 5일 일본 방문 당시 아베 일본 총리와 함께 도쿄 시내 최고급 철판구이 전문점에서 식사를 했다. 아베 총리로서는 일본 외교의 전통인 ‘오모테나시(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문화)’를 실천한 것뿐이었으나 고급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기념촬영을 한 트럼프 대통령은 서민 행보로 인기를 얻은 오바마 전 대통령과 비교 대상이 되고 말았다.
문 대통령 또한 2018년 9월 19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북한 주민들이 자주 찾는다는 평양대동강수산식당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식사를 했고, 평양시민들이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격의 없이 소탈한 문 대통령의 식사 장면이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며 논란에 휩싸인 경우도 있었다. 2017년 12월 15일 한중 정상회담을 위해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당시 주중대사였던 노영민 비서실장과 함께 중국 서민들의 ‘맛집’에서 아침 식사를 했다. 그런데 이 식사가 ‘혼밥’ 시비에 휘말리면서 정치권 일각에서 ‘대접받지 못한 방중’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해당 식당은 문 대통령의 방문 이틀 만에 ‘문재인 대통령 세트’ 메뉴를 출시했고 ‘대박’이 났다는 후문이다.
대통령의 ‘식사 정치’는 마무리도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 2주년을 맞아 참모들과 함께 청와대 인근 한 청국장 전문점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이날 청와대는 식사를 마친 문 대통령이 노영민 비서실장을 비롯해 주영훈 경호처장, 조국 민정수석, 강기정 정무수석, 고민정 대변인 등 참모진 10여명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청와대로 복귀하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했다. 당시 이 장면은 이들 참모들이 대통령과 식사를 함께하는 ‘식구’로서 탄탄한 팀워크를 유지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국민에게 심어주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왕태석 선임기자 kingw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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