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서양화 선보이는 김선두, 학고재 개인전
“동양화, 한국화라고 하면 항상 단절된 전통으로만 치부되는 것이 아쉬웠어요. 저는 ‘현대적 한국화’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화라고 해서 늘 추상적이고 정서적이기만 하라는 법은 없다. 꼭 흑백의 수묵화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김선두 작가는 독자적인 화풍을 탄생시켰다.
그의 ‘장지화’는 다양한 색채는 물론이고 수묵화에서나 보일 법한 깊이감까지 자랑한다. 긴 시간을 두고 분채의 색을 공들여 쌓은 덕분이다. 때문에 튼튼한 장지가 물감을 머금고, 발색은 그윽하다. “먹을 배제한 채색화에서도 숙련된 필법을 구사한다면 수묵의 깊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이 적중한 셈이다.
3월 1일까지 서울 삼청동 학고재 본관에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 ‘김선두’는 한국화의 한계를 특정 짓지 않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주제 의식에서도 마찬가지다. ‘느린 풍경’ 연작 시리즈에서 작가는 “이미지 구성을 통해 삶에서의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현대화의 특성과, 한국화 특유의 정서적 시선을 결합했다. 반사경 안의 풍경은 작가가 실제로 달린 적 있는 도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러나 ‘SLOW’, 즉 ‘잠시 멈춤’ 표지판 앞에서 잠깐의 여유를 가지면 그 뒤로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작가는 기존의 그림엔 없었던 반사경을 추가함으로써 “삶의 속도를 잠시 줄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완성했다.
깨달음은 일상적 영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반으로 갈라 펼쳐진 도미의 몸을 보며 작가는 “꼿꼿이 등을 맞대고 대립하는 형태”와 “사람의 무시무시한 얼굴”을 동시에 발견했다. 마침 “화려하고 완벽해 보이는 이념일수록 더 폭력적이더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 때였다. 작가는 이 ‘마른 도미’를 통해 “극단의 이념에 갇혔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경직되고 괴물처럼 변하는지”를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그림도 여럿 있다. ‘넘버원(No.1)’의 부탄가스 캔은 화려한 수식들로 온 몸을 휘감고 있다. ‘국민 연료’, ‘넘버원’, ‘국내 최초’ 등 잔뜩 흥분해서 자랑을 쏟아낸다. 작가는 작업실에서 이 부탄가스 캔을 발견했다. “아빠는 자기 자랑, 잔소리가 심하다”고 얘기하던 아들과 “퇴임식에서 자기 얘기만 하던 지인”을 떠올리며 그렸다고 한다.
‘행’은 말 그대로 작가 김선두의 자화상이다. 다만 본인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24살의 모습을 회상해 그렸다. 작품 하단에 월요일부터 일요일을 뜻하는 알파벳을 나란히 적고, 그 위에는 세 달여의 일정을 흐릿하게 새겼다. 삶을 쓰고 지운 흔적은 먼지처럼 쌓여있다. “이제 돌아갈 수 없는 젊은 시절”처럼, 작가는 “그림 속 뿌옇게 쌓인 일상도 기억 속에서 흐려져 간다”고 했다.
이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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