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본 고교 한국사 8종 교과서]
‘4대강, 환경훼손’ 비판적 해석… 6ㆍ25전쟁 ‘남침’ 명확히 기술
오는 3월부터 중ㆍ고등학생들은 새 역사교과서로 공부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이후 새로 발간된 검정 교과서다. 새 교과서는 2018년부터 도입된 ‘2015년 개정 교육과정’을 따랐지만 국정화 폐지 후속 조치를 거치느라 다른 과목보다 2년 늦게 학생들을 만난다.
한국일보는 지난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교과서 검정을 통과한 고교 한국사 8종(금성출판사ㆍ동아출판ㆍ미래엔ㆍ비상교육ㆍ씨마스ㆍ지학사ㆍ천재교육ㆍ해냄에듀)의 내용을 27일 분석했다. 6·25전쟁 등 편향성 논란이 일 수 있는 부분을 집중 점검했다.
◇박정희 산업화는 ‘부정평가’ 더해
우선 2009년 이명박 정부, 2018년 문재인 정부의 고교 한국사교과서 검정을 모두 통과한 미래엔, 지학사 교과서 내용을 시계열 비교 분석했다.
두 교과서 모두 2009년 교과서에 없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부분을 소개하며 이를 비판적으로 해석했다. 지학사는 4대강 정비 사업을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 4대강을 준설하고 보를 설치하여 하천의 생태계를 복원한다는 명분으로 22조여 원의 국비를 투입하였다’고 정의했고, 미래엔 교과서는 한발 더 나이가 ‘이명박 정부 시기 추진된 4대강 사업은 생태 환경을 크게 훼손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서술했다. 지학사는 박근혜 정부에 대해 ‘출범 초기 국가정보원과 국방부의 여론 조작 사건으로 어려움에 빠졌다. 이후 세월호 참사, 역사 교과서 국정화, 일본군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등 사회적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였다’고 기술했다.
정부 집필 기준이 바뀌면서 교과 서술이 달라진 부분도 있다. 2009년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은 ‘저개발 국가였던 우리나라가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계획을 기반으로 이룩한 경제 발전의 과정을 서술한다’고 명시한 반면, 2018년 개정 기준은 ‘경제성장은 정부와 국민이 이룬 성취라는 일국적 시각에 가두지 말라’로 바뀌었다.
미래엔의 기존 교과서는 박정희 정부의 경제 산업화를 성과 중심으로 기술했지만 새 교과서는 산업화의 명과 암을 모두 다뤘다. 예컨대 2009년도 교과서는 박정희 정부의 성장중심 정책을 소개하며 인도 등 ‘다른 국가와의 비교’를 탐구활동으로 제시했지만, 새 교과서는 ‘긍정ㆍ부정평가 비교’로 양면을 볼 것을 유도했다. 특히 “수출에 앞장선 대기업은 국민의 희생을 담보로 한 특혜를 받으며 성장하였고, 그 규모를 더욱 키워나갈 수 있었다”처럼 기업가에 대한 부정적 서술도 많았다.
이밖에 지학사의 경우 일제침탈사 등을 기존보다 더 자세하게 다룬 점이 눈에 띈다. 특히 ‘반민족 행위’에 대한 서술을 대대적으로 늘렸다. 2009년 교과서에선 일제침탈사 소개에 작은 탐구활동으로 친일파를 다루고 있으나, 2018년 개정 교과서는 친일 반민족행위에 대해 사료와 사진을 덧붙여 한 쪽에 걸쳐 설명하고 있는 식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모든 출판사가 중요하게 다뤘지만 사용한 용어에서 차이를 드러냈다. 동아ㆍ금성ㆍ씨마스 등이 위안부를 ‘성노예’라 명시한 반면, 비상ㆍ천재 등은 위안부라 표현하면서도 ‘끔찍한 고통’ 등 우회적 단어를 사용할 뿐 성노예를 적시하지 않았다. 해냄에듀 교과서는 2000년 일본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과 2018년 서울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 평화법정’을 비교해 주제를 확장했다.
◇‘남침’ ‘대한민국 정부수립’ 명확히 표현
국정화 논란을 거치며 정부의 교과서 집필기준은 이전보다 크게 간소해졌다. 분량은 기존의 약 16분의 1로 줄었고, 내용도 방향제시에 그친다. 그 몇 줄 안 되는 새 집필 기준에서 학계가 가장 논란을 일으킨 부분이 6·25 전쟁에 관한 대목이었다. 2009년 집필 기준은 ‘6·25 전쟁의 개전에 있어서 북한의 불법 남침을 명확히 밝히고, 전쟁의 발발 배경을 국내외적으로 구분하여 서술한다’며 △전쟁에 따른 물적 인적 피해 △이산가족의 고통 등 항목별로 서술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반면 2018 개정 집필 기준에서는 6·25전쟁에 대한 집필 기준 자체를 명시하지 않아 논란을 낳았다. 교육계 일부가 ‘좌편향 교과서’ 양산을 우려한 지점이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6ㆍ25 전쟁에 대해 8종 교과서 전부 남침(북한의 남한 침략)을 명확히 했다. 남한과 북한에 대한 표현 역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 ‘북한 정권 수립’으로 통일했다. 대부분의 교과서가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소련 대립을 설명하는 등 전쟁의 성격도 다각도로 드러냈다. 지학사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씨마스는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을 다루는 등 민간인 희생을 조명한 점이 눈에 띈다.
4ㆍ3사건의 서술 분량은 늘었다. 제주교육청의 ‘4ㆍ3 집필기준’이 학습요소로 반영되며 생긴 변화다. 사건을 ‘좌익 소요’나 ‘폭동’으로 보는 대신 배경과 의의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라는 제안도 반영됐다. 동아출판은 사건을 ‘냉전과 분단ㆍ탄압에 대한 저항이며,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한 비극’이라고 서술하며 2003년 노무현 정부의 공식 사과 사실까지 다루고 있다. 반면 ‘좌익 세력과 일부 주민들의 무장봉기’라 서술한 교과서(금성)도 있다. 교과서 편수용어가 정의되지 않은 12ㆍ12사태는 대부분 교과서가 2009년과 동일하게 ‘군사반란’으로 썼다.
◇편향성 따질 게 아니라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해야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최근 사건이 교과서에 담긴 것은 논쟁점으로 남는다. 촛불집회는 금성출판사 외 모든 교과서에 실렸다. 동아출판은 ‘21세기형 민주화투쟁’이라는 해석과 함께 2002년 ‘미선ㆍ효순 추모집회’부터 이어진 흐름을 조명했다. 새 기준에서 강조한 민주화가 각 교과서에 반영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비상교육ㆍ금성출판사 외 모든 책에서 언급했다. 박근혜 대통령 등 최근 정부에 대한 평가가 담긴 것도 논란이었으나 대부분은 이들 정부를 역사적 사실과 함께 간단히 언급했다.
소소한 변화는 있지만, 학계와 교육계에서는 ‘새 역사교과서 역시 기존 보수성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8종 모두 근대사 전개 과정을 국가 수립으로 귀결 시키는 ‘국가주의적 서술 방식’을 따르고 있는 데다, 목차와 교과서에서 현대사 비중 또한 대동소이하다. 비상교육 한국사 저자인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수능 출제방향이 교과서 공통 내용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에 다른 출판사에 없는 내용을 많이 다룬 교과서는 학교에서 채택되기 쉽지 않다”며 “집필기준이 변해도 대부분의 출판사는 관행을 유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이제 교과서 편향성을 논쟁하기보다 이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정일영 서강대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는 “역사의 논란점을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 교과서의 역할”이라며 “좌ㆍ우 다양한 관점이 담긴 책을 보고 이를 학생들이 판단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한종 한국교원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역사는 하나의 사실로 정리될 수 없다”며 “역사를 암기과목으로 보는 대신, 이를 배워 어떤 역량을 갖추게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혜정기자 arete@hankookilbo.com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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