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보수대통합 논의가 한창이다. 혁신통합추진위원회가 내달 중순까지 중도ㆍ보수 통합 신당을 출범시키겠다는 일정표를 제시했고,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의 당대당 논의기구도 가동되기 시작한 만큼 설 연휴가 끝나면 야권재편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정계로 복귀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보수통합엔 관심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논의의 중심엔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새보수당의 실질적 수장인 유승민 의원이 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니다. 향후 두 사람의 ‘담판’ 결과에 따라 통합이냐, 선거연대냐가 결정될 공산이 크다.
통합신당이 출현한다면 두 사람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같은 당이든, 아니든 보수진영 유력 대선 주자로 꼽히는 황 대표와 유 의원은 2022년 대선 때까지 계속 경쟁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공교롭게 황 대표와 유 의원은 닭띠 동갑이다. (황 대표는 1957년생, 유 의원은 58년생이지만 ‘빠른 생일’이라 교육 과정을 같이 밟았다)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동지로 만나게 될 두 사람. ‘동갑 케미’(조화ㆍ호흡)를 기대해봐도 될까.
법조인 vs 경제학자, 모든 게 달랐던 둘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나고 자란 곳은 물론, 학교와 행적도 전혀 달랐다. 서울 출생인 황 대표는 서울 최고 명문고로 꼽히던 경기고(황 대표가 시험을 치고 입학한 마지막 기수다)를 졸업해 성균관대 법학과를 나왔다. 유 의원은 대구 토박이로 고교 역시 대구 명문 경북고를 나왔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황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사법시험에 합격, 쭉 검사 생활을 하다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반면 유 의원은 경제학자의 길을 걷다가 2004년 한나라당(한국당 전신) 비례대표로 처음 원내에 입성한 뒤 대구에서 내리 4선을 했다. 국정 경험은 황 대표가 한 수 위고, 정치 경험에 있어선 유 의원이 2019년 초 정계에 첫 발을 들인 황 대표의 대선배라 할 수 있다.
친해질 기회도, 대화도 없었다
두 사람 사이 특별한 인연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의 행적만 봐도 친분을 만들 기회 자체가 별로 없었던 듯하다.
그렇다고 연결고리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황 대표가 국무총리에 지명된 2015년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유 의원이었다. 그때 유 원내대표는 새정치민주연합 등의 거부로 황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준이 계속 미뤄지자 단독 표결 처리를 하겠다고 밀어붙였다. 결국 어렵게 여야 합의가 이뤄져 황 대표로선 ‘여당만 표결에 참여한 총리’라는 오명을 남기지 않을 수 있었다.
두 사람과 사적으로 연관된 이들도 있다고 한다. 유 의원과 가까운 관계자는 “황 대표의 경기고 동기이자, 유 의원의 서울대 동기인 인사가 여럿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황 대표도 지난해 2월 한국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유 의원은 친한 친구의 친구”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다만 그는 “그 친구가 작고(作故)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황 대표가 한국당 수장에 오른 뒤에도 둘은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지난해 6월에는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출판기념회에 나란히 참석했는데,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11월 황 대표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포기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할 때 유 의원이 위로방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때도 황 대표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대화는 하지 못했다.
진중한 황ㆍ유, 의기투합해 시너지 낼까
서로에 대한 사감(私感)이 생길 기회가 거의 없었던 만큼, 두 사람의 ‘케미’는 앞으로가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성향으로만 보면 황 대표와 유 의원 모두 진중하고, 결심이 서기 전까지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다는 게 공통된 평가다. 유 의원은 측근들과만 소통한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황 대표는 측근들도 속내를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수면 위로 떠오른 보수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진행돼 온 것은 이처럼 결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사람의 스타일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그럼에도 황 대표와 유 의원 모두 보수재건의 의지가 강한 만큼, 주변에서는 서로 조금씩만 내려놓고 양보한다면 시너지를 기대해 볼 만하다는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전제는 ‘양보’인 점을 감안하면, 당권이나 대권 등을 놓고 양보 없는 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땐 등 돌릴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동지와 적 사이 어디쯤에 있는 두 사람이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만들어나갈지 관심이 모인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