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 공중에 둥근 곡선을 그리면서 무심하게 툭 매달린 조명이 있다. 천장에 조명을 달지 않아도 천장에 조명을 단 것 같아 유용하다. 이 조명은 조형미와 실용성을 두루 갖춰 불과 몇 년 전 한국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수많은 복제품이 나왔던 이 조명은 이탈리아 디자인 거장 아킬레 카스틸리오니(1918~2002)가 1962년 만들었다. 그는 천장에 등이 없어 거실이 어두운데도 무언가 읽기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이 조명을 만들었다. 가로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길게 늘어뜨린 아치를 버티게 하려고 한쪽에는 60㎏의 대리석을 달았다. 청소, 가구 재배치, 이사 때는 어쩌나 싶은데, 대리석 한편에 동그란 구멍을 뚫어 뒀다. 등을 옮길 일 있으면 막대를 넣어 들라는 얘기다.
일상의 사물을 혁신적인 제품으로 변환해 ‘디자인계의 마르셀 뒤샹’이라 불렸던 카스틸리오니의 작품 세계를 집약해 보여주는 전시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아시아 최초로 열리고 있다. 그의 디자인 철학은 ‘익명’이다. 누가 디자인했는지 보다 쓰임새 있는 물건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번 전시에선 그런 그의 작품, 드로잉, 일러스트, 소품 등 100여점을 둘러볼 수 있다.
‘롬피트라타 스위치’는 그런 의미에서 카스틸리오니의 대표작이다. ‘틱톡 스위치’라 불리는 이 제품은 전선에 스위치를 부착해 손가락으로 스위치를 밀면 딸깍 소리를 내며 불이 켜진다. 출시 이후 1,500만개 이상 판매됐다. 야외 카페의 고정 테이블 상판에 구멍을 뚫고 세 다리를 교차해 접어 벽에 걸 수 있도록 고안한 ‘쿠마노 테이블’도 사용자를 배려한 디자인으로 꼽힌다.
지금은 평범하지만 담배를 피우면서 잠시 재떨이에 얹어 둘 수 있도록 스프링을 부착한 ‘스파라레 재떨이’도 그가 가장 먼저 디자인했다. 이번 전시를 맞아 한국을 찾은 딸 조반나는 “카스틸리오니가 무언가를 디자인할 때는 항상 이유가 있었다”라며 “그의 디자인 이면에는 항상 기능적 해결책이 담겨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능적 해결책은 신선했다. 무선전화 이전 유선전화의 시대, 벽에 붙은 유선전화를 쓸 때 한 곳에 오래 서 있어야 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그는 자전거 안장을 이용했다. 자전거 안장을 떼내 반구 형태 지지대에 붙인 1957년작 ‘셀라 스툴’이다. 긴 통화를 할 때 편하기도 하면서, 지루함도 덜어 줬다.
트랙터 의자에다 탄성이 있는 고정대를 조합해 만든 ‘메자드로 스툴’ 또한 전혀 다른 것들을 한데 합쳐 새로운 제품으로 만든 것이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로 만든 ‘토이오 플로어 램프’, 영사기 필름을 감는 휠 위에 전구를 끼워 전선을 효율적으로 감은 ‘람파디나 램프’도 그랬다. 익숙한 사물을 전혀 다른 용도의 제품으로 만들어 냈다.
전시를 주최한 프로젝트 콜렉티브의 서정덕 실장은 “카스틸리오니는 사물의 형태나 재료보다 기능이 무엇인지, 사람들이 실제로 물건을 쓸 때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며 “마르셀 뒤샹이 ‘레디메이드’ 개념을 만들었다면 카스틸리오니는 일상의 사물을 새롭게 디자인한 ‘리디자인’ 개념을 창시했다”고 평가했다.
밀라노 공대에서 건축을 공부한 카스틸리오니는 2차대전이 끝난 1944년 형제들과 함께 건축사무소를 세우고 디자인을 시작, 58년간 290여개 제품을 내놨다. 동시대에 활동한 알렉산드로 멘디니(1931~2019), 브루노 무나리(1907~1998), 엔조 마리(1932~) 등과도 협업했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최고의 영예인 ‘황금콤파스상’을 아홉 차례나 받았고, 이탈리아 정부는 2002년 그가 숨지자 그가 디자인한 모든 작품과 자료들을 문화재로 지정했다. 전시는 4월 26일까지.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