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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직권남용죄 범위 좁힌 기준 내놓은 대법 ‘블랙리스트’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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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직권남용죄 범위 좁힌 기준 내놓은 대법 ‘블랙리스트’ 판결

입력
2020.01.3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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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해 12월 세월호 참사 관련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고법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해 12월 세월호 참사 관련 재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고법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적용 범위가 모호해 법적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직권남용죄의 새로운 기준이 제시됐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0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의 상고심에서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직권남용의 적용 범위를 지나치게 폭넓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게 전원합의체 판결의 취지다. 이번 판결은 ‘적폐청산 수사’ 등에 적용돼온 직권남용죄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내놓은 최초의 판단이라는 점에서 향후 관련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으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백원우ㆍ박형철 전 청와대 비서관 등도 같은 혐의를 받고 있어 주목된다.

대법원은 직권남용죄 적용 기준 가운데 일부 항목에 대해 법리 오해와 심리의 미진함을 지적했다. 형법 123조에 규정된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 행사를 방해’한 경우에 성립하는 데 이 중 ‘의무 없는 일’에 대해 엄격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봤다. 김 전 실장이 한 행위 중 문체부 공무원에게 지원 배제 지시를 내린 것 등은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지만 각종 명단을 보내도록 하고 공모사업 진행 상황을 보고토록 한 것은 유죄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직권남용 행위의 상대방이 공무원일 경우 통상적인 업무 요청과 협조는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다.

대법원 판결로 앞으로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에 대한 직권남용 유죄 입증은 더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선 사법농단 의혹 관련자들 재판에 대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전원합의체 심리 기간만 1년 6개월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동안 추상적인 법 조항으로 여론에 따라 수사가 이뤄진 탓에 공직사회 복지부동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많았음을 감안하면 혼선이 줄어들 거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문화예술계에서 블랙리스트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았다는 불만이 제기되는 부분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대법원도 “이번 파기환송이 반드시 무죄 취지라고 할 수 없다”고 한 만큼 고법에서 합리적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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