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감금생할 속에 커지는 분노와 두려움”… 우한 봉쇄 7일 간의 기록
알림

“감금생할 속에 커지는 분노와 두려움”… 우한 봉쇄 7일 간의 기록

입력
2020.01.31 18:39
0 0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 우한 거주자의 도시 폐쇄 후 일기 소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이 외부로부터 닫힌 나흘 째인 26일 우한의 한 차로가 텅 비어 있다. 우한=로이터 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성 우한이 외부로부터 닫힌 나흘 째인 26일 우한의 한 차로가 텅 비어 있다. 우한=로이터 연합뉴스

“아파트 창문을 통해 내다본 바깥 풍경은 완전히 텅 빈 거리와 깜박이는 가로등, 거대한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을 통해 반복 노출되는 ‘실내에 머물라’는 권고까지… 그야말로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아랍권 대표 매체 알자지라가 31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발원지로 지난 23일부터 봉쇄된 중국 후베이성 우한 거주자의 7일 간의 소회를 소개했다. 알자지라는 우한에 거주하는 한 선생님의 일기 형식으로,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돼 상황을 알기 어려운 우한의 모습을 전했다. 익명을 요청한 그는 “먹고 자는 기본 일상만 반복되는 비현실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도 “모든 사람들이 도시가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23일

봉쇄 첫 날이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ㆍ사스) 발병 이후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스크를 사러 나갔다가 처음으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약국 여러 곳을 전전해 봐도 마스크를 구할 수 없어 나나 내 가족이 감염될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고생 끝에 마스크를 몇 개 구입할 수 있었다. 그나마 한 시간 넘게 외출할 수 있었던 마지막날이다.

◇24일

음력 섣달그믐이다. 음력 설에 할머니댁에 가기로 했던 우리 가족의 계획은 당연히 취소됐다. 아버지는 밤 10시 전에 불을 끄셨다. 아버지가 섣달그믐에 불을 끄는 것은 처음 봤다. 새해를 맞이하며 하나 이상의 불을 꼭 켜 두는 게 아버지의 의식이었다. 방문하는 가족도, 술 마시는 가족도, 오락거리도 없고, 온 가족과 도시를 공포에 떨게 하는 지속적인 두려움만 있어 일찍 잠자리에 드신 듯하다.

중국 관영 중앙(CC)TV의 새해맞이 축제 프로그램 때문에 더 화가 났다. 우한에 대한 언급은 시 낭송 외에 없었고, 프로그램 진행자는 “왕치앙이 호주오픈 테니스대회에서 세레나 윌리엄스를 꺾었기 때문에 무엇이든 이길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번 위기 이후 중국 정부에 대한 신뢰는 더 깨질 것 같다.

◇29일

식료품이 떨어져 간다. 어쩔 수 없이 외출했지만 다행히 슈퍼마켓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재고도 충분했고 가격도 터무니없이 비싸지 않았다. 다만 매장에 들어서기 전 발열검사와 손세정제를 사용하는 절차가 추가됐다.

정부가 모든 TV 예능 프로그램 방영을 취소시켰다. TV 대신 ‘의용군 행진곡(중국 국가)’을 부르거나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의 동영상을 봤다. 영상을 보고 웃을 수 있었지만 동시에 울고 싶어졌다.

지루해질 때마다 내 안의 분노가 차오른다. 우한 당국은 ‘우한에 새로운 사스가 출현했다’는 글을 올린 8명을 체포한 일을 비롯해 계속해서 진실을 숨기고 있다. 그 당시에도 상황이 장밋빛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지만 도시 전체를 봉쇄할 만큼의 위기 수준일 것으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한은 감염병이 사라지기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 또는 수십 년 후에 다음 세대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우리 세대가 최소한 다음 세대를 망치지 않기를 바란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