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코위(대통령)와 프라보워(국방장관) 그리고 ‘천사’만 알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방위산업 협력관계가 깨질 수도 있냐는 질문에 인도네시아 국방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 내놓은 답이다. 실제 최근 외신과 현지 매체에 보도돼 국내 일부 언론이 인용한 내용들은 심상치 않다. 인도네시아가 프랑스 전투기와 잠수함, 러시아 전투기 구매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잠수함과 전투기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방산 협력의 양대 기둥이다. 더구나 두 사업 모두 계약은 마쳤지만 돈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다. 잠수함 2차 사업은 석 달째 선수금이, 차세대 전투기(KF-X/IF-X) 공동 개발은 2년째 분담금이 미지급된 상황에서 인도네시아가 다른 나라 무기를, 그것도 전투기와 잠수함을 콕 집어 살 수도 있다고 운을 떼니 우리 입장에선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인도네시아 국회의원 말처럼 진의 파악은 쉽지 않지만, 인도네시아의 정치 지형과 군부 내 세력 교체, 인도네시아 국방정책의 변화 등 복잡한 측면에서 풀이할 수 있다. 단순히 기술이전 뒤 ‘먹튀’로 판단하는 건 양국 협력관계에 마이너스가 될 뿐이다. 양국의 잠수함과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어떤 이면이 있는지 살펴봤다.
먼저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과 프라보워 수비안토 국방장관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둘은 인도네시아 대선에서 두 번이나 맞붙은 일생의 정치 라이벌이다. 지난해 4월 대선에서 조코위 대통령에게 또 다시 패하자 프라보워는 불복 소송을 제기하며 맞섰다. 7월 ‘지하철(MRT) 단독회동’을 통해 화해한 뒤 10월 국방장관직을 받아들였다. 비록 조코위 대통령 밑에 있지만 입김은 다른 장관에 비해 훨씬 세다는 얘기다.
대선 공약으로 자주국방을 내세웠던 프라보워 장관은 취임 이후 말레이시아ㆍ터키ㆍ중국ㆍ일본ㆍ필리핀ㆍ프랑스ㆍ독일ㆍ러시아 등으로 광폭 순방을 하고 있다. 매번 그가 받는 의전은 대통령에 버금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기 구매 다변화를 통한 균형외교’를 천명하면서 각국에서 흘린 얘기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상황이다. 프라보워 장관이 벌써부터 차기 대선을 노리면서 업적쌓기에 들어갔다는 얘기가 들린다.
특히 조코위 1기 정부 때 조코위 대통령의 측근으로 군부를 좌지우지했던 위란토 정치법률안보조정장관이 물러나면서 인도네시아 군부는 프라보워 인사들로 재편되고 있다. 이들이 10년 넘게 군부를 떠나 있던 프라보워 장관에게 이전 방산 협력사업 현황을 악의적으로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컨대 “한국 잠수함은 잠항시간이 짧다” “소음이 심하다” “최대수심으로 잠항하면 온도가 47도까지 올라간다”는 식이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모두 허위사실이고 음해”라고 밝혔다.
실제 우리나라가 2011년 해외에 첫 수출한 3척의 잠수함(1차 사업)은 인도네시아 해군의 주력으로 자리잡았다. 우리나라의 기술을 이전받아 조립한 3번함은 최근 수심 250m 잠항에 성공(한국일보 22일자 10면)했다. 인도네시아 역사상 처음이라는 기록도 남겼다. 이런 성공을 발판으로 지난해 4월 3번함 진수식 때 2차 사업(추가 3척) 계약을 따냈으나 아직 선수금이 들어오지 않았다. 전진구 대우조선해양 자카르타지사장은 “납입시점에 프라보워 장관이 취임하면서 미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1차 사업비는 이미 완납됐으니, 잠수함 관련 ‘먹튀’ 얘기는 잘못됐다.
조코위 대통령은 3번함이 수심 250m 잠항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프라보워 장관을 대동하고 직접 수라바야 해군2함대를 시찰하기도 했다. 조코위 대통령은 “잠수함을 건조하면서 기술이전을 받은 것은 좋은 협업의 모델”이라며 “우리가 독자적으로 잠수함을 만들 수 있도록 협력을 이어가라”고 당부했다. 2차 사업 역시 한국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독주하는 프라보워 장관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한 행보라는 풀이도 있다.
10년 가까이 쌓아온 양국의 잠수함 협력을 깨는 것은 인도네시아 입장에서도 막대한 손해다. 잠수함을 건조하는 국영조선소 ㈜PAL은 한국 잠수함 체계에 맞는 공장을 건설한 상태고, 잠수함 관련 인력 역시 모두 한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만약 2차 사업을 다른 나라에 넘기면 인도네시아의 잠수함 전력은 다시 원점에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하는 것이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은 정치적 지형만 따지면 잠수함보다 형편이 좋지 않다. 이 사업을 체결한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전 대통령이 한때 정치적 동지였던 조코위 대통령과도, 육사 동기인 프라보워 장관과도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이다. 분담금 미납과 잦은 잡음을 딛고 한국과의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사업을 계속 끌고 나갈 우군이 없는 셈이다.
다만 다른 나라의 전투기를 ‘구매’하는 것과 전투기를 ‘공동 개발’하는 사업은 구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실제 인도네시아는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도 러시아와 전투기 구매 계약을 맺기도 했고, 미국 전투기를 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특히 인도네시아가 계약을 깬다면 이미 납부한 분담금 2,000여억원을 날리게 된다.
무기를 사고파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 간 공동으로 무기를 개발하는 사업은 우리나라도, 인도네시아도 처음 해보는 시도라 진행 과정에서 벌어지는 혼선과 논란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양국이 큰 틀에서 합의를 이뤄내고 이견을 좁혀나가는 게 최선이다. 익명을 요구한 인도네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잠수함 기술이전 성공은 정책의 일관성과 ‘무기 수입→기술이전→독자 생산→수출’로 이어지는 선(善)순환 구조의 중요성을 일깨웠다”라며 “전투기 역시 기술이전을 통한 선순환을 바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은 양국 정상 간 약속이고 단순 구매가 아니라 공동 개발이기 때문에 ‘계약이 깨질 수 있다’는 최근 언론 보도는 과장된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연락 받은 게 없고 협의 절차도 남아 있어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방산 관련 사업을 하는 현지 교민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밝힌 인도네시아 정부와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치인들의 태도는 한국과의 협의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라며 “우리 정부의 적절한 대응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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