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중국 우한→중국 전역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발병이 의심되는 환자를 판단하는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의심환자(suspect case)’ 기준을 발열이나 기침 등 심한 호흡기 감염 증상이 있는 환자면서 증상이 나타나기 이전 14일 동안 중국을 체류한 기준이 있는 경우로 새롭게 규정한 것이다. 이전까지는 체류지역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로 한정했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WHO가 중국 전 지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높아졌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보고 한국도 ▲중국 후베이성 등 위험지역으로부터의 입국 제한 ▲격리자 선정기준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일 WHO 홈페이지에 게재된 지난달 31일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인간 감염에 대한 글로벌 감시(Global Surveillance for human infection with novel coronavirus)’ 기술 지도(technical guidance)를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의심환자’ 기준이 바뀌었다. 의심 환자는 감염 환자를 의심하는 가장 낮은 단계의 환자 기준이다. 새로운 의심환자 기준은 ‘심한 급성 호흡기 감염 (발열, 기침 및 병원 입원이 필요한 환자)이 있고 증상 발병 전 14 일 동안의 임상 증상과 중국 내 여행 또는 체류 기록을 확인가능하며, 다른 병인이 없는 환자’ 다.
새로운 기준 이전에는 지난달 21일자 기술지도의 의심환자 기준이 적용됐는데 당시 기준은 증상과 증상의 발병 시기는 차이가 없지만 지역을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또는 우한시의 살아있는 동물시장으로 제한했었다. 열흘 만에 의심환자를 판별하는 지역을 후베이성에서 중국 전역으로 확대했다는 얘기다. 이는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의 확산세를 감안한 조치로 보인다.
의협 등 일부 전문가들은 한국도 중국 전역을 위험지역으로 보고 격리환자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환자 기준을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유전자(PCR) 검사 등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확정된 확진환자 기준은 WHO와 같지만 의사환자는 ‘중국 후베이성을 다녀온 후 14일 이내에 발열 또는 호흡기증상(기침, 인후통 등)이 나타난 자’로 지역을 중국 후베이성으로 한정하고 있다. 감염을 의심하는 가장 낮은 단계인 ‘조사대상 유증상자’의 경우 ‘중국을 방문한 후 14일 이내에 폐렴이 나타난 자’로 규정돼 있지만 영상의학적(방사선촬영)으로 폐렴을 확인한 경우여서 WHO보다 문턱이 높다. 보건소 등 선별진료소에 엑스레이 장비가 없는 곳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정부가 이동식 엑스레이 촬영장비를 보급하기로 했지만 당장 기계를 구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보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의미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WHO의 의심환자는 한국의 조사대상 유증상자라고 볼 수 있다”라면서 “WHO가 의심환자 정의를 변경한 것은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언한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세를 심각하게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중국에선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어서 중국에서 각국으로 입국하는 사람에게 심각한 발열이나 호흡기 증상이 있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의심해야 한다고 본 셈이다. WHO의 의심환자 정의에 붙은 ‘입원이 필요한 경우’라는 단서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현재 발표된 연구논문들을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초기 증상이 폐렴 말고도 일부에선 설사가 확인되는 등 다양하다”라면서 “그러한 상황에 대해 의사의 재량을 준 것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의협은 역학조사팀을 중심으로 한 한국 보건당국의 방역체계가 환자 증가를 억제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 밀접접촉자 기준을 강화해 자가격리 환자를 대폭 늘릴 것을 주장했다. 환자가 발생하면 역학조사팀이 꼼꼼하게 조사해 동선을 추적하고 감염환자의 접촉자를 파악하는 현재 체계는 환자가 소수일 때는 적절하지만 환자가 12명이 넘어간 상황에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환자를 조사하는 동안 미처 파악하지 못한 접촉자가 돌아다니면서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최재욱 의협 과학검증위원장(고대의대 예방의학과교실 교수)는 “역학조사관이 폐쇄회로(CC)TV 들여다 보면서 한 사람씩 걸러내는 것은 환자가 1, 2명 발생했을 때”라면서 “관리대상이 많아지면 관리방식을 바꿔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WHO는 이미 확진환자와 1m 이내에 있었던 사람을 밀접접촉자로 분류하는 등 기준을 만들어뒀다”며 “우리도 역학조사에 매달리기보다 이런 기준을 활용해 그물을 넓게 치고, 이 그물 안에 들어온 사람은 확진검사를 나중에 받더라도 일단 14일간 자가격리해서 바이러스 전파를 억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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