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직업
2020년대의 10년을 전망하는 이 기획을 시작했을 때 한 친구가 내게 대뜸 물었다. “앞으로 어떤 직업이 잘 나갈 것 같아?” 자신의 아이 미래를 생각해서 던진 질문이었다. 미래를 탐구하는 데 개인적 차원에서 직업의 미래만큼 관심이 큰 주제는 없을 것이다.
◇일ㆍ직업ㆍ일자리의 변화
‘직업(occupation)’과 유사한 개념이 ‘일(work)’과 ‘일자리(job)’다. 먼저 이들의 관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회학자 유홍준 등의 ‘직업사회학’에 따르면, 일이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가치 있는 재화 및 서비스를 만들어내기 위한 생산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직업이란 생계유지와 사회적 역할 분담 및 자아실현을 지향하는 비교적 지속적인 일을 뜻한다.
이 직업은 세 가지 측면으로 구성돼 있다. 개인이 능력을 발휘하는 개인적 측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적 측면, 보수를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경제적 측면이 그것이다. 마지막으로 일자리란 특정한 직업 구성원이 수행하는 구체적인 과제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 규정에서 볼 수 있듯, 직업의 현재와 미래를 구속하는 것은 일의 성격과 변화다. 이러한 일의 성격과 변화를 선구적으로 탐구한 대표적인 이들로는 사회비평가 앙드레 고르와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을 들 수 있다.
고르는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이 일자리를 줄이고, 그 결과 노동시장에 노동력이 과잉 공급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변동에 그가 내세운 대안은 노동시간 단축과 기본소득 보장이다. 고르는 일의 성격에 특히 주목했다. 그에게 일이란 강압적이고 지겨운 것이다. 따라서 일로부터 우리 인류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그는 주장했다. 노동시간 단축이 낳는 자유시간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게 고르의 메시지였다.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에서 과학기술의 발달이 적지 않은 노동자들을 실업자로 전락시키는 암울한 미래를 경고했다. 원제는 ‘일의 종말(End of Work)’이다. 리프킨이 보기에 정보사회의 도래가 정신노동마저 기계로 대체시킴으로써 인류는 일로부터 추방되는 낯선 시대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고르와 유사하게 리프킨 역시 노동시간 단축 등을 그 대안으로 제시했다.
고르와 리프킨이 강조하듯, 정보사회의 도래 및 진전은 일과 직업의 구조변동을 가져 왔다. 특히 제4차 산업혁명의 전개는 일의 성격, 일자리의 규모, 직업의 형태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우려하는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일자리의 감소다. 과거에는 자동화가 블루칼라 일자리를 뺏어갔다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는 인공지능의 확산 등이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앗아가고 있다. 이렇듯 일자리의 구조변동이 자연스럽게 직업의 구조변동을 낳고 있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2020년대와 직업의 미래
2020년대에 직업의 미래를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먼저 주목할 자료는 2016년 세계경제포럼(WWF)에서 발표된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다.
보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제4차 산업혁명의 진전이 낳고 있는 직업군의 전망이다. 구체적으로 2020년에는 데이터 분석가, 컴퓨터ㆍ수학 관련 직업, 건축ㆍ엔지니어링 관련 직업, 전문화된 세일즈 관련 직업 등이 유망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 가운데 기업의 관점에서 특히 중요한 분야는 데이터 분석과 전문화된 세일즈다. 정보의 홍수 속 의미 있는 데이터의 추출과 치열해지는 경쟁 속 효과적인 제품 및 서비스 홍보가 갈수록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이 보고서를 유명하게 한 것은 일자리 증감에 대한 전망이다. 보고서는 2020년까지 710만개 일자리가 줄어들고 200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져 결과적으로 510만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구체적으로 사무직, 제조업, 건설ㆍ채굴, 미술ㆍ디자인ㆍ오락ㆍ스포츠ㆍ미디어, 법률 분야에서 일자리 감소가 두드러지는 반면, 경영ㆍ재무ㆍ운영, 관리감독, 컴퓨터ㆍ수학, 건축ㆍ엔지니어링, 영업 관련 분야가 그 증가를 주도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보고서는 2016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전 세계 7세 어린이의 65%가 지금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직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러한 전망은 현실을 반영한 부분도, 과장한 부분도 있다. 서구사회에서 직업구조의 변동은 1970년대 탈산업사회의 등장과 정보사회의 도래를 통해 본격화됐다. 사회학자 대니얼 벨은 탈산업사회에서 지식계급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 역시 권력의 원천이 정치와 경제에서 지식으로 변화하고, 이 지식을 담당하는 ‘코그니타리아트’가 새로운 권력층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정보사회와 제4차 산업혁명의 진전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변화의 속도다. 이 속도는 2020년대에 더욱 빨라지고, 그에 따라 컴퓨터, 데이터, 인공지능 등을 위시한 과학기술 관련 직업들이 크게 부상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변화가 지구적 차원에서 일률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국제분업에서의 위상, 개별 국가의 산업구조, 정부의 발전전략 등에서의 차이에 따라 직업의 구조변동의 규모와 내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미래지향적 직업교육이 중요하다. 산업구조의 변화는 직업구조의 변화를 초래하며, 이 변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추진돼야 한다. 이러한 교육개혁에서 특기할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어릴 적부터 과학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학습이 이뤄져야 한다. 둘째,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이 대체할 일과 대체할 수 없는 일의 구분을 고려해야 한다. 인간이 갖는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의 일과 직업의 중요성이 갈수록 증가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목할 것은 이러한 직업구조의 변동에서 관찰할 수 있는 개인적 삶의 변화다. 여기에는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성격의 부식’이 유용하다. 세넷의 질문은 젊은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풍요롭게 살고 있는데도 마음은 왜 그들과 달리 불안하다고 느끼는가에 있다. 유연성으로 무장한 자본주의가 일의 성격을 변질시킨 점에서 세넷은 그 원인을 찾는다. 이제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여러 개의 직업으로 살아가야 하고, 그 업무의 내용 또한 유연성이 증대함으로써 우리 인류는 부초처럼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한국사회와 직업의 미래
2020년대 우리 사회 직업구조의 변화는 어떻게 진행될까.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지구적 경향과 한국적 상황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제4차 산업혁명의 규모와 속도는 전통적인 제조업 분야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동시에 새로운 정보 분야 일자리를 증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 사회에서도 관찰된다.
동시에 한국적 특수성도 눈여겨봐야 한다. 특히 고령화의 진전은 이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적잖이 창출시킬 것으로 보인다. 더하여, 복지국가의 강화, 1인 가구의 증대, 여가 문화의 확산, 반려동물 문화의 확대 등도 이와 연관된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영역을 이룰 것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의 ‘2019 한국직업전망’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7년까지 취업자 수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직업은 19가지다. 구체적으로 간병인, 간호사, 간호조무사, 물리 및 직업치료사, 생명과학연구원, 수의사,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변리사, 변호사, 사회복지사, 산업안전 및 위험관리원, 항공기조종사, 항공기객실승무원, 네트워크시스템개발자, 컴퓨터보안전문가, 한식목공, 에너지공학기술자가 그들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보건ㆍ의료ㆍ생명과학, 법률, 사회복지, 산업안전, 항공, 컴퓨터네트워크ㆍ보안, 건설, 화학ㆍ섬유ㆍ환경 및 공예 관련 분야가 주목 받고 있다. 2020년대 우리 사회를 규정할 주요 경제ㆍ사회적 힘들이 과학기술, 로봇화, 고령화, 환경 등에 있음을 주목할 때, 이러한 예측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망이 함의하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고교ㆍ대학 교육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특히 사회변동에 상응하는 기초교육 강화, 학제 개편, 산학협력 활성화 등의 대학개혁이 더욱 심도 깊게 추진돼야 한다. 둘째, 교육개혁이 국가적 의제로 자리 잡아야 한다. 교육이 학부모를 포함해 국민 모두의 관심인 만큼 미래지향적 교육개혁을 위한 국가적 차원의 합의가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의 굿모닝 2020s’는 2020년대 지구적 사회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일보> 연재입니다. 매주 화요일에 찾아옵니다. 다음주에는 ‘위험사회’가 소개됩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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