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유도 대표 조구함과 고교 유망주 이준환
※ 어린 운동 선수들은 꿈을 먹고 자랍니다.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를 보고 자란 선수들이 있어 한국 스포츠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여전히 스타의 발자취를 따라 걷습니다. <한국일보>는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롤모델인 스타를 직접 만나 궁금한 것을 묻고 함께 희망을 키워가는 시리즈를 격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달려가는 한국 유도는 설 연휴 직후부터 다시 맹훈련에 돌입했다. 고교ㆍ대학ㆍ실업 유도선수 500여명은 지난달 29일부터 전남 순천팔마체육관에 모여 하루 오전ㆍ오후 각 2시간씩 훈련 상대를 번갈아 가는 ‘자율대련’으로 기량을 쌓고 있다. 가능한 많은 선수들과 부딪혀보며 최대한 다양한 상대 기술을 접하고, 자신의 장점을 가다듬을 수 있는 기회다.
성인과 학생 선수들이 한 데 모인 만큼 유망주들에겐 국내 최정상 선수들의 기술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다. 4일 순천팔마체육관에서 만난 남자고등부 81㎏급 최고 유망주로 꼽히는 이준환(18ㆍ경기 경민고)의 눈도 번뜩였다. 도쿄올림픽 남자 유도 100㎏급 금메달을 노리는 조구함(28ㆍ수원시청)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밀려오는 수줍음을 이겨내고 선배의 장기인 ‘왼쪽 한팔 업어치기’ 기술 비결을 물었다.
후배의 ‘짧고 굵은’ 질문에 조구함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사실 동료 선수들로부터 준환이가 성인 국가대표 선수들과 연습 때도 이길 정도로 좋은 기량을 가진 선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이준환의 주력기술인)오른팔 공격에 대한 장점이 많을 텐데, 왼팔 기술을 물어보는 게 대견하다”고 했다. 조구함과 이준환 모두 오른쪽 공격을 주무기로 한다. 조구함은 왼쪽 팔을 활용한 기술까지 갖춰 국제 무대에서 경쟁력을 높여왔다.
다만 조구함은 기술 노출 우려 탓인지 후배가 물은 왼팔 기술을 인터뷰 때 상세히 알려주지는 않았다. 그 대신 7일까지 진행되는 합동훈련 기간 동안 한 번쯤 만나 직접 알려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조구함은 “준환이와 내가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며 “같은 체급 선수들 사이에서 키가 작은 편이라는 점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키가 상대보다 작다고 해서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반은 지고 들어가는 것”이라며 “단신일 경우 신체 중심점 또한 낮아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할 수 있다”고 했다.
둘은 초등학교 때 스스로 유도 선수의 길을 택했다는 점 또한 닮았다. 그렇기에 유도인생에 대한 목표 또한 명확하고 진지하다. 이준환이 “선수로서의 목표는 일단 2024년 파리올림픽 출전”이라고 전하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레 올림픽 이야기로 흘러갔다.
지난 리우올림픽 남자 100㎏에서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 수술 여파로 16강에서 탈락한 경험을 품고 있는 조구함은 “준환이가 국가대표가 되더라도 올림픽 메달까지 가는 과정에서 수 많은 패배를 하게 될 것”이라며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을 이어갔다. 그는 “올림픽과 같은 중요한 무대에서 패한다면 좌절감이 커 슬럼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그 시기 패배를 ‘큰 좌절’로 느끼기보다 ‘큰 가르침’으로 여겨야 한 층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조구함의 애정 어린 조언에 이준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환은 “반드시 마음에 새기고 성장하겠다”며 “저도 열심히 노력해 형과 함께 (국가대표로서)국제대회를 누비고 싶다”고 했다.
파리올림픽 동반 출전도 가능할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두 선수 모두 각자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란 뜻을 전했다. 조구함은 “현재 목표는 도쿄올림픽 금메달이지만 내 몸이 버텨줄 때까지는 유도 선수로 있고 싶다”며 “준환이와 파리에 함께 가게 된다면 오늘 이 만남이 더 의미 있게 와 닿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했다.
이준환은 조구함에게 “도쿄올림픽까지 다치지 말고 후회 없는 시합을 하고 오셨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유도가 한국의 ‘효자종목’으로 꼽힌다지만 유도 종주국인 일본에서 열리는 터라 일본의 기세가 워낙 높다. 텃세도 우려되는 게 현실이다. 조구함은 담담히 이준환의 어깨를 짚으며 격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끝으로 조구함은 이준환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고 했다. 국가대표가 되더라도 대련 상대 선수들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갖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 그는 “큰 대회를 앞두고 대표팀 기량 향상을 위해 많은 유도 선수들과 연습 대련을 하게 된다”며 “국가대표가 된 뒤 연습 대련 선수들의 존재가 당연하다고 생각되고 기술이 잘 통하면 속으로 짜증을 내기도 했다”고 지난 날을 되돌아봤다.
그러면서 “어느 순간 겸손함을 잃은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됐다”며 “선배든 후배든 함께 훈련하는 모든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동료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후배가 ‘더 큰 선수’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우쭐함을 감추지 못했던 과거를 반성한 선배 얘기에 이준환은 “꼭 명심하겠다”며 “성장하더라도 꼭 말과 행동을 조심하겠다”고 약속했다.
순천=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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