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하반기에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 사고 원인이 배터리에서 비롯됐다는 정부 발표가 나왔다. 하지만 해당업계에선 이번 조사 결과를 신뢰하긴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논란도 예상된다. ESS는 태양광과 풍력 등으로 만든 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ESS 화재사고 조사단은 지난 해 8~10월 발생한 ESS 화재사고 5건 중 4건이 배터리에서 비롯됐다는 조사 결과를 6일 발표했다. 나머지 1건은 배터리에 외부 물질이 접촉하면서 불이 난 것으로 추정했다.
조사단은 우선 배터리를 발화점으로 지목했다. 또 화재 현장에서 수거한 배터리에서 내부 발화 시 나타나는 용융(물질이 가열돼 액체로 변하는 현상) 흔적이 확인됐고 충전 시 상한전압과 방전 시 하한전압의 범위를 넘는 현상이 발견됐으며 이 때 배터리 보호기능이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사단은 양극판이나 음극판, 분리막 등에서 발생한 이물질도 배터리 결함의 근거로 제시했다.
하지만 배터리 업계에선 조사단의 이번 발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삼성SDI는 “배터리는 ESS 내부에서 유일하게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가연성 물질이라 불이 붙는 것이지 점화원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휘발유도 성냥불과 같은 점화원이 있어야 화재가 발생하지, 휘발유 자체만으로 불이 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배터리 용융 흔적 역시 다른 곳에서 발생한 화재가 옮겨와 녹을 수 있는 건데, 내부발화로 단정 짓는 건 무리라고 강조했다. 전압의 범위를 넘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업체들은 조사단이 데이터를 잘못 해석했다며 이물질 검출은 화학반응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삼성SDI에선 조사단이 발표한 배터리의 경우 화재 현장의 배터리가 아니라는 점도 꼬집었다. 실제 조사단은 1군데에서만 타다 남은 배터리를 해체해 살펴봤을 뿐 나머지는 사고 발생 지역에서 발견된 배터리와 동일한 제품과 같은 시기에 설치된 사업장의 배터리로 분석했다. LG화학도 “지난 4개월 동안 가혹한 자체 실증 실험에서 화재가 없었다”고 전했다.
정부의 이번 발표가 반 년 전, 나왔던 1차 조사 결과와 상이하단 점에서도 의구심은 남는다. 앞선 2017년 8월부터 1년 9개월 간 23건의 ESS 사업장 화재가 발생하자, 정부는 민관 합동 원인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지난 해 6월 배터리 결함보단 ESS 설비의 부실한 보호와 운영, 관리가 원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배터리 자체에서 문제가 비롯됐단 이번 발표와는 전혀 다르다.
이에 대해 김재철 공동 조사단장(숭실대 전기공학부 교수)은 “1차 조사는 설비가 전부 다 타고 기록도 없어 외부적 환경으로만 조사했다”며 “1차 조사 후 배터리 운용 기록을 남기게 블랙박스를 설치하도록 해 이번에는 배터리가 발화지점인 것을 추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양 사는 정부 발표에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향후 방지 대책도 내놨다. LG화학은 중국 난징(南京)에서 생산한 ESS 배터리를 전량 회수하고, 삼성SDI는 올 상반기까지 ESS화재 확산을 차단하는 장치를 설치하기로 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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