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어권 영화로 오스카 장벽 넘은 쾌거
한국 영화 창의성ᆞ서사력 세계에 입증
제2, 제3 ‘기생충’ 탄생 환경 조성해 가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국제장편영화상, 각본상을 받아 주요 부문 4관왕에 올랐다. ‘기생충’은 지난해 5월 칸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에 이어 골든글로브(외국어영화상)와 오스카상까지 거머쥠으로써 한국 영화의 힘을 전 세계에 증명해 보였다. 한국 영화 역사는 이제 ‘기생충’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됐다.
‘기생충’의 오스카 4관왕은 한국 영화 101년 만의 결실이자 아시아계 영화 최초라는 의미가 크다. 그동안 오스카는 유독 유색 인종에 인색했다. 남성, 백인, 보수는 오스카를 대변하는 키워드였다. 이번 최우수작품상 후보에 오른 작품 9편도 ‘기생충’을 제외하면 모두 백인의 영화였다.
그런 오스카상을 아시아의 한국, 그것도 사회 계급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기생충’이 받은 건 오스카로서도 일대 변화다.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건 오스카 92년 역사상 처음이다. 제작사 바른손E&A의 곽신애 대표가 작품상 수상 소감으로 “상상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 실제 벌어졌다. 의미 있고 상징적이며 시의 적절한 역사가 쓰여졌다”고 한 게 예사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봉 감독은 영화가 가진 힘을 새삼 증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위축돼 있는 한국 사회에도 큰 위안을 안겼다. 오스카 시상식에서 한국어 수상 소감을 듣는 감격을 네 차례나 선사했다. 할리우드 영화인들도 기립 박수로 경의를 표했다. “영화 공부할 때 늘 가슴에 새긴 말이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바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한 말이다.” “나는 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을 사랑한다.” 봉 감독이 자신과 나란히 감독상 후보에 오른 선배 영화인을 향해 경의를 표할 때 우리는 꿈을 현실로 만든 자의 여유를 함께 누릴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기생충’ 이후다. 제2, 제3의 기생충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다. 이미 유명세를 얻은 감독에게만 투자가 몰리고, 관객에게 도발적인 물음을 던지는 작은 영화는 스크린에 걸릴 기회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면 한국 영화의 또 다른 100년은 암울할 것이다.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키울 토대를 만드는 건 정부와 국회의 몫이다. 대기업 투자배급사 중심의 유통시스템을 개선하고 한 영화에 상영관을 몰아주는 스크린 독과점을 막을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 그것은 영화인들의 오랜 요구다. 공정한 제작 환경이라도 보장해 달라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기생충’의 영광을 한국 영화사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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