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작품ㆍ감독상 등 4개부문 석권… 세계 영화계 변화의 상징 돼
봉준호 감독이 말했던 ‘자막 1인치의 장벽’이 무너지자 ‘기생충’이 아카데미를 휩쓸어버렸다. 해외 언론과 영화 관계자들은 ‘기생충(Parasite)’과 ‘휩쓸다(Sweep)를 합친 ‘패러스윕(Parasweep)’이란 단어를 만들어 쓰면서 놀라움을 나타냈다. ‘기생충’은 한국 영화의 쾌거를 넘어 세계 영화계 판도 변화의 상징이 됐다.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4개 부문을 차지했다.
‘기생충’의 4관왕 기록은 경쟁작 ‘1917’(감독 샘 멘데스)을 완벽하게 눌렀다는 점에서 더 놀랍다. ‘1917’은 1차 세계대전을 소재로 ‘전쟁과 인간’이라는, 가장 아카데미스러운 주제를 다룬 영화다.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면서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기생충’에 밀려 촬영상 등 3개 부문 수상에 그쳤다. 아카데미가 가장 아카데미스러운 작품 대신 ‘기생충’을 선택한 것이다. ‘기생충’ 같은 비영어권 영화가 작품상을 차지한 것 자체가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다.
이는 달라진 시대에 맞춰 변화하기 위한 아카데미의 노력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주류 백인 남성 위주 영화제라는 비판을 받아온 아카데미는 2016년 투표인단 격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 수를 2,000여명 가까이 늘리면서 해외, 여성, 젊은이 등을 대폭 보강했다.
‘기생충’의 수상은 아카데미의 이런 ‘자기 반성’이 투영된 결과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한국 영화, 더 넓게는 비영어권 영화가 미국 영화 시장의 침체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이자 원자재로 떠오를 것”이라고 봤다. 김형석 영화평론가도 “아카데미가 마지막 걸림돌이었던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이번 ‘기생충’의 수상은 세계 영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 말했다.
한편,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한국 영화 최초로 올랐던 ‘부재의 기억’(감독 이승준)은 수상에 실패했다.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참사 당시 관계 당국의 부실한 조치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날 레드카펫에는 이 감독과 세월호 참사 유족 2명(단원고등학교 2학년 8반 장준형군 어머니 오현주씨, 2학년 5반 김건우군 어머니 김미나씨)이 함께 등장해 눈길을 모았다.
로스앤젤레스=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ㆍ김표향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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