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시상식은 국제영화제가 아니다. 그저 ‘로컬(지역영화상)’일 뿐이다.”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영화제인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일침이었다. 이 발언에 뜨금해진 미국 아카데미 회원들이 ‘이제 국제영화제가 되자’ 결심했을까. ‘백인 남성 영화인, 그들만의 잔치’라는 비판을 들어 온 아카데미가 올해는 이례적으로 한국영화에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등 노른자위 3개 부문을 바쳤다.
이번 아카데미 수상 과정에서 영화 못지않게 화제가 된 것은 봉 감독의 촌철살인 같은 발언들이었다. ‘아카데미는 로컬’ 발언은 지난해 10월 미국 매체 ‘벌처’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나왔다. 한국 영화가 높아진 명성에 비해 오스카상과는 인연이 너무 없다는 질문에 “이상하긴 하지만 별로 큰일은 아니다”라며 던진 말이었다. 미국 영화계의 편협함을 꼬집으면서, 동시에 영화는 세계 보편의 언어임을 강조한 말이었으니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말이었다.
‘로컬’에 이어 화제가 된 말은 ‘1인치 장벽’이었다. 봉 감독은 지난달 5일 골든글로브 시상식 때 수상 소감을 밝히면서 “(자막이 깔리는)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면서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생각하는데, 그 언어는 영화다”라고 말했다. 영어권 중심의 수상 경향, 영화의 보편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기생충’의 수상은 서구 영화계에 ‘다양성’이란 화두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일 영국아카데미(BAFTA) 시상식 뒤 봉 감독은 다양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여성, 인종, 성적 정체성 등 그 모든 것이 우리가 의도적으로 의식하지 않더라도 균형이 자연스럽게 맞춰질 날이 올 것”이라고 대답했다.
봉 감독의 재치 있고 겸손한 화술도 화제였다. 아카데미상 후보 지명 소감을 묻자 “나는 곧 깨어나서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실상은) 난 여전히 ‘기생충’ 촬영 현장에 있고 모든 장비는 엉망이 돼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밥차에 불이 난 걸 보면서 울부짖고 있고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좋고 행복하다”고 말해 청중을 웃겼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감독상 수상 뒤 함께 후보에 오른 네 명의 감독들을 언급하며 “오스카가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 5등분해 다른 감독들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감독상 후보였던 마틴 스코세이지에 대한 헌사는 감동을 이끌어 냈다. “어렸을 때 영화를 공부하면서 ‘가장 개인적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란 말을 새겼다. 그 말을 한 사람이 바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다. 마티(마틴 스코세이지의 애칭)의 영화를 보며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함께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너무 영광이다.” 봉 감독의 말이 끝나자 영화인들은 스코세이지를 둘러싸고 기립박수를 보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