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박자박 소읍탐방]<52>영암의 명품 전통마을 군서면 구림마을
영암에선 월출산만 보인다. 들은 넓고 산은 높다. 13번 국도를 이용해 나주에서 강진으로 가다 영암군으로 접어들면 월출산이 멀리서부터 웅장한 자태로 다가온다. 드넓은 평야에 홀로 우뚝 솟은 바위산 능선이 우락부락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속속들이 아름다움을 만끽하려면 등산이 최고지만, 월출산은 바깥에서 바라만 봐도 좋은 산이다.
◇황토색 고운 담길, 기와집 옆 미술관
부분에 집착해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 흔히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고 표현한다. 영암에선 반대다. 월출산이 워낙 돋보여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산과 들판만 있고 마을은 숨어 있다. 영암읍 서쪽 평야와 산이 맞닿은 경계 지점에 오래된 전통마을이 있다.
군서면 구림마을은 그 역사를 2,200년이라 자랑한다. 고대 부족국가 형성기인 삼한시대에 해당한다. 기록이 불분명하니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게 무의미하지만, 오래된 마을이라는 주장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마을 입구에 상대포 역사공원이 있다. 도로를 제방으로 삼고 연못을 조성해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시든 연꽃대가 수면에 데칼코마니 작품을 그리고, 그 사이로 유유히 청둥오리가 헤엄친다. 연못 한쪽 귀퉁이에 ‘왕인호’라 이름한 쪽배가 한 척 매여 있다. 상대포(上臺浦)는 영산강과 연결되는 물길에 있던 포구였다. 현재는 바다로 흐르지 못하고 간척사업으로 형성된 드넓은 평야에 둘러싸여 있다. 영암군은 상대포를 백제의 학자 왕인이 근초고왕 때인 397년 일본으로 건너간 포구로 보고 있다. 이때 왕인은 천자문과 논어 10권을 함께 가져가 일본에 한학을 알리고 태자의 사부가 되었다. 일행에는 대장장이, 옹기장이, 금속 세공 장인인 금장, 화가 등이 포함돼 일본 고대문화 발달에 공헌했다고 전해진다. 대부분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와 ‘고사기’의 기록을 근거로 한 주장이다.
상대포 인근에는 대규모로 왕인 박사 유적지를 조성해 놓았다. 여기서 ‘박사’는 백제시대 오경(五經)에 능통한 학자에게 주던 ‘오경박사’를 말한다. 월출산 자락에는 그가 독서했다고 전해지는 책굴과 문산재가 있고, 유적지에는 전시관과 석인상을 중심으로 공원을 조성해 놓았다. 사실과 주장이 뒤섞인 공간이니 진지하게 접근하기보다 산책하기 좋은 관광지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겠다.
왕인박사가 아니라도 구림마을의 역사를 말해 주는 유적과 유물은 차고 넘친다. 상대포공원 위쪽에 영암도기박물관이 있다. 1998년 가마터에서 출토된 도기는 마을 이름을 따 ‘구림도기’라 부른다. 구림도기는 국내 최초로 유약을 발라 고열에서 구운 도자기다. 박물관은 8~9세기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대학생 공모 작품도 전시하고 있다. 생활 도기가 예술로 진화하는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박물관부터 본격적인 마을 나들이가 시작된다. 박물관 옆에 회사정(會社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일반적으로 정자는 경치 좋은 언덕에 자리 잡기 마련인데 회사정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다. 규모도 보통 정자각에 비해 크고, 고운 단청으로 장식된 것도 특이하다. 이름난 가문의 선비가 자연을 벗삼아 글을 짓고 수양하던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회사정은 구림마을 대동계 집회 장소다. 요즘으로 치면 마을회관이자 광장인 셈이다. 구림마을에서 공동체의 자치 운영 조직인 동계(洞契)가 시작된 건 1565년(명종 20)이었다. 1609년에서 1747년 사이 작성한 구림 대동계 규약에는 도로 보수, 산림 보호, 교량 건설 등 마을 운영 전반에 관한 사항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마을 일에 태만한 사람은 ‘출동’한다는 벌칙 조항도 있다. 동네에서 더는 거주할 수 없게 내친다는 말이니 가장 무거운 형벌이었다. 회사정 계단 앞에 비석처럼 생긴 작은 돌덩이가 하나 놓여 있다. 공동체의 규율을 어긴 이들을 공개적으로 벌하는 ‘형틀’이었다.
회사정 주변엔 소나무 여러 그루가 멋드러지게 숲을 이뤄 운치를 더한다. 소나무 가지 사이로 고풍스러운 기와집이 여러 채 보인다. 구림마을에는 신라시대 낭주 최씨를 시작으로 고려 말에 난포 박씨가 들어왔고, 조선시대 들어서는 함양 박씨, 연주 현씨, 선산 임씨, 해주 최씨 등이 세거해 왔다. 향촌에서 기반을 쌓은 이들 가문의 고택이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다.
함양 박씨 고택인 ‘육우당(六友堂)’ 현판은 명필 한석봉의 글씨다. 영암 덕진면은 한석봉의 외가이고 어머니는 인근 독천시장에서 떡장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어쩌면 모자가 ‘글씨 쓰기와 떡 썰기’ 대결을 펼친 곳도 영암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해주 최씨 고택 앞에는 ‘묏버들’ 시비가 세워져 있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임에게 / 주무시는 창 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 밤비에 새 잎이 나거든 나인가 하고 여기소서.’ 조선 중기 기생 홍랑이 함경도 북도평사로 부임한 최경창(1539~1583)을 떠나 보내며 지은 시다. 구림마을 해주 최씨 고택은 ‘고죽 최경창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함경도와 한양을 오가며 이어진 둘의 사랑 이야기가 이곳을 장식하고 있는 이유다.
구림마을엔 이외에도 죽림정, 간죽정, 죽정서원, 국암서원 등 정자와 서원까지 수두룩해 한옥마을의 분위기가 그윽하다. 마을을 관통하는 동계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골목은 황토색 돌담길이어서 걷는 재미를 더한다.
영암도자박물관 뒤편에는 군립 ‘하정웅미술관’이 들어섰다. 면 단위 마을에선 흔치 않은 시설이다. 하정웅(81)은 오사카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로 미술 수집가이자 사업가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미술가의 꿈을 접고 젊은 시절부터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을 거둔 그는 본격적으로 미술 작품 수집에 몰두했다. 그가 수집한 작품을 기증받아 1992년 광주시립미술관이 ‘하정웅컬렉션’ 상설전시관을 개관했다. 2015년에는 3,700여 작품을 부모의 고향인 영암군에 기증,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구림마을에 들어섰다. 하정웅미술관은 매년 2~3회 그의 컬렉션을 공개 전시한다. 지금은 지역 작가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비둘기가 살린 도선국사와 도갑사
구림마을을 거닐다 보면 곳곳에서 비둘기 조각을 발견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구림마을에 얽힌 전설이 기록돼 있다. 신라 때 최씨 집안의 처녀가 바위에서 빨래를 하다가 물에 떠내려온 오이를 먹고 아들을 낳았다. 시집 안 간 여식이 출산을 했으니 집안 망신으로 여긴 부모는 숲 속 바위에 아이를 버렸다. 3일 후에 다시 가보니 비둘기들이 아이를 덮어 보호하고 있었다. 아이는 성장해 중이 되었는데 이름이 도선이다. 그후 비둘기 구(鳩), 수풀 림(林)을 써서 마을 이름을 구림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이야기는 도선 국사(827~898) 탄생 설화이기도 하다. 마을 중앙의 국암서원 뒤에 ‘국사암’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바로 도선이 버려졌던 곳이다.
구림마을에서 약 5km 떨어진 도갑사는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도갑사는 월출산 자락의 사찰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역사는 오래됐지만 여러 차례 화재를 겪어 현재 전각은 모두 1981년 이후 지은 건물이다. 사찰 입구의 해탈문만은 1473년(성종 4)에 지은 그대로여서 국보 제50호로 지정돼 있는데, 아쉽게도 보수 공사 중이라 가림막이 쳐져 있다. 대신 난간 돌을 곡선으로 부드럽게 깎은 해탈문 앞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앞마당으로 들어서면 월출산의 맑은 기운이 가득하다.
구림마을에서 사찰에 이르는 길은 아름드리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다. 이곳뿐만 아니라 구림마을 주변 가로수가 전부 벚나무다. 이름하여 ‘100리벚꽃길’이어서 봄이 더욱 기대된다.
구림마을엔 전통마을의 장점을 살린 한옥 펜션이 많지만, 내세울 만한 먹거리가 없고 식당도 부족한 편이다. 관광지마다 흔한 카페 하나 없는 점도 아쉽다. 대신 10km 정도 떨어진 학산면에 독천낙지골목이 있다. 영산강 하구둑이 완공되기 전까지 독천리 인근 갯벌은 최고의 낙지 생산지였다. 지금은 갯벌이 사라지고 바다에서도 멀어졌지만 낙지 요리법은 그대로 이어져 15개 식당이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갈낙탕, 연포탕, 낙지비빔밥, 낙지탕탕이, 낙지호롱구이 등 다양한 낙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애호박찌개, 팥죽 등 향토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도 여럿 있다.
영암=글ㆍ사진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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