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와 청년 일자리, 경쟁구도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고용연장”을 언급하면서 계속고용제 시행, 현행 60세인 정년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고용연장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검토를 시작할 때가 됐다”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당장 경영계는 “기업 부담이 커지고 청년 취업난도 가중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선 상황이다. 그러나 고용정책을 총괄하는 이재갑 고용부 장관은 지난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된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년연장은 임금체계 개편과 맞물려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정년이 늘어난다고 해서 청년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보긴 힘들다”고 강조했다. 고령자와 청년이 모든 일자리에서 경쟁관계에 있지 않으며,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바꾸면 기업 부담 역시 줄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고령자와 청년 일자리가 충돌하는 곳은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 일부 일자리”라고 설명한 이 장관은 “강소기업을 육성해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고령자에게 적합한 직무도 발굴해 고용을 확대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노동계의 반대가 큰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 조치에 대해선 “주52시간제 후퇴가 아니라 오히려 이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이 장관은 주 68시간 시절로 되돌아 갈 거란 노동계의 우려를 “기우(杞憂ㆍ쓸데없는 걱정)”라고 일축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31일부터 재해ㆍ재난 등에만 허용해 온 특별연장근로를 업무량 급증과 같은 경영상 사유로도 인가해주기로 했다. 그러자 제1노총 지위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공동 투쟁을 결의했다. 이들은 오는 19일 해당 규칙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상태다.
올해 가장 중점을 둘 과제로 일자리 확대와 일터 문화 혁신을 꼽은 이 장관은 “반등한 고용지표를 넘어서 국민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저임금은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에서 결정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올해 고용부의 핵심 추진 과제는 무엇인가.
“일자리다. 노사상생형 일자리 등 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일자리 확대 계획을 세우면 정부가 이를 지원하는 식으로 일자리를 늘려갈 방침이다. 고용위기 징후를 미리 포착해 대체산업을 선정ㆍ육성하는 방식으로 지역 일자리 문제에 선제 대응해나가겠다. 또 국민취업지원제도나 국민내일배움카드를 안착시켜 산업구조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국민고용안전망도 확충해나갈 방침이다.”
-여러 연령층 중에서 40대의 고용한파가 매섭다.
“40대 고용부진은 이들이 주로 일하는 제조업과 건설업황이 부진해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있고, 높은 임금 등을 이유로 기업에서 채용을 꺼리기 때문이다. 특히 100인 미만 사업장에서 고용이 부진하다. 현재 구직 상담 등을 위해 전국 고용센터를 찾은 40대 2,000여명을 설문조사했고, 40대 노동자를 채용한 사업장에 들러 사업주가 생각한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있다. 이 같은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40대 고용부진과 관련한 산업에 대한 지원과 이들의 재취업 지원방안 등을 담은 40대 일자리 종합대책을 오는 3월 중 발표할 계획이다.”
-정년연장 이야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기업 부담이 늘고 청년 취업이 줄어들 거라 우려한다.
“청년과 고령자의 일자리가 겹치는 영역은 대기업과 공공기관이다. 임금체계 개편 없는 정년연장이 이뤄질 경우 이런 충돌이 심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일자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나 서비스업에선 청년과 고령자 간의 일자리 경쟁구도가 성립되지 않는다. 정년이 연장된다고 청년들이 일할 기회가 준다고 보기 어렵다. 강소기업을 육성해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에서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고, 고령자에 적합한 직무를 발굴해 이들에 대한 고용확대도 추진하겠다. 퇴직한 고령 전문인력의 재취업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올해 중요한 과제다.”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노동정책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에선 특별연장근로 인가사유 확대로 정부 대표 노동정책인 주52시간제가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장근로를 제한해도 급격한 상황 변화에는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노사정이 탄력근로제 개선에 합의한 것도 그런 필요성 때문이었다. 다만 관련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 잠정적인 보완조치로 시행규칙을 개정해 특별연장근로 인사사유를 확대한 것이다. 돌발 상황에 대응하고자 한 것이지 주 68시간 일하던 과거 체제를 되돌리려는 게 아니다. 노동시간 단축은 정부의 확고한 정책기조로, 노동계의 우려는 기우라고 생각한다. 불가피한 경우에만 한정해 추가 연장근로를 허용할 방침이다. 또 원칙적으로 1주 12시간 이내에 연장근로를 인가하고 예외적으로 12시간을 넘을 경우 그 기간이 연속 2주를 넘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노동자가 요청할 경우 건강검진을 받게 해 의사 소견에 따라 적절한 대처를 받도록 했다. 이런 건강권 보호 조치를 사업주가 이행하지 않으면 추가 연장근로 신청을 허가하지 않거나 장시간 근로감독사업장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하청업체 노동자 산업재해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강화한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개정된 근로자 파견 판단 지침에 대해 기업들 역시 불만이 있다.
“하청업체에서 도급 형태로 일하는 직원이 간접적으로라도 업무 수행과 관련한 지시를 받았다면 불법파견으로 간주된다. 기업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불법파견 여부를 판단할 때 산재방지나 안전 관련 조치가 업무지시 한 것으로 여겨져 불리한 판정이 나올까 가장 우려한다. 그러나 산업안전과 관련한 예방조치는 작업지시로 판단되지 않는다. 원청에서 예방조치를 시행할 때 안전관련 사항이라고 명확히 해주면 논란이 없을 것이다.”
-한해 발생하는 산재 사망자 수를 700명대까지 줄일 수 있을까.
“지난해 산재 사망자가 855명이었다. 전년보다 116명 감소했다. 올해 목표는 725명이다. 안전의식이 높아졌고 지난해부터 추락방지 그물망 설치 유무를 보는 등 위험요인 중심으로 산업안전 감독을 진행해 지난해 산재 사고가 크게 줄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직원들이 관내 소규모 사업장을 불시 방문하는 패트롤(순찰) 점검도 큰 효과가 있었다. 올해엔 패트롤 점검을 제조업까지 확대할 생각이다. 노사정이 함께 노력하면 어렵지만 올해 목표도 달성할 수 있다.”
-노동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계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물론, 한국노총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김동명 신임 한국노총 위원장이 후보 시절 ‘조합원과 노동자의 신뢰를 잃었다’며 투쟁방침을 밝힌 건 힘든 여건에 있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한국노총이 더욱 노력하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를 강조해온 만큼 새 집행부 역시 대화를 통해 여러 현안을 해결해 나가길 기대하고 있다.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제1노총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있다. 조직 내 반대로 제한이 있는 것 같지만 민주노총 역시 조속히 공식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에 참여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어렵고 힘든 여건에 놓인 분들의 목소리를 민주노총이 대변해주길 바란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률은 노동자와 사업주의 이해가 첨예하게 갈리는 사안이다. 올해 인상률은 어떻게 보나.
“지난해 최저임금이 결정될 때 대통령께서 임기 내 1만원 달성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사과했다. 최저임금이 인상돼야 한다는 정책 방향은 변함이 없지만 인상폭은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선에서 결정되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정부는 근로장려금 확대 등을 통해 저소득 노동자의 소득개선 정책을 지속 시행해오고 있다.”
인터뷰=양홍주 정책사회부장 yanghong@hankookilbo.com
정리=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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