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지난해 말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전파가 시작돼 국내에 첫 환자가 보고된 지난달 20일 이후 한국 사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에 휩싸였다. 초기 방역에 실패해 186명의 환자와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ㆍMERS)의 생생한 기억은 선제적 방역 대책을 주문하는 여론을 만들었다. 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방역을 위해 외국인 입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환자가 지나간 식당, 상점, 백화점, 극장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대외활동을 최소화하는 등 사회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 다행히도 국내 확진자 대부분 경증이고 전파속도도 둔화하면서 ‘제2의 메르스 사태’는 재연되지 않는 분위기다. 메르스 사태 이후 우리 사회의 방역시스템은 그만큼 탄탄해진 것일까. 강력하고 선제적인 대응의 부작용은 없는 것일까.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ㆍ1993~2002년) 교수를 거쳐 참여정부 시절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원장(2006~2008년) 등을 역임한 진보 성향의 공공보건학 전문가 김창엽(60)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를 10일 연구실에서 만나 우리 방역시스템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_먼저 메르스 때와 이번 코로나19 대응을 비교해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우선 각 주체들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규정이 전보다 명료해진 것 같다. 이럴 때 병원은 뭘 준비해야 하고, 질병관리본부 보건복지부 국무총리실 청와대는 뭘 해야 할지, 큰 골격 측면에서 이전보다 역할 분담이 명료하게 됐다. 질본의 기술적 역량도 올라간 것 같다. 바이러스를 확인하는 검사기법도 상당히 향상됐다. 메르스 때 크게 비판 받았던 부분이라 정보공개와 소통 측면은 훨씬 투명해졌다. 주목할 건 민간의료기관과 보건소에서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지, 즉 긴급행동지침(SOP)이 작동하는 방식이 눈에 띄게 나아졌다. 방역인력, 공항ㆍ항만 검역, 외국의 질병 발생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는지, 전체를 지휘할 리더십이 안정되고 잘 작동하는지와 같은 기초체력은 강해졌다. 물론 정상 사회라면 나아져야 하는 게 당연하다.”
_보완할 부분은 없나.
“메르스 때 제일 많이 나왔던 비판이 ‘매뉴얼이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우왕좌왕했다는 거다. 그런데 감염병마다 경로도 치명률도 다르다. 매뉴얼을 만들었는데 똑같은 사건이 생기지 않으면 오히려 대응 태세를 왜곡시킬 가능성도 있다. 메르스 때는 주로 초기에 방역이 안된 병원을 통한 감염이 많았는데 이번에는 전혀 다른 양상이지 않나. 앞으로도 신종 감염병은 계속 발생할 거고 그 형태는 아무도 알 수 없다. 2018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전 지구적 위기를 초래할 전염병을 예상하며 이를 ‘질병 X’(disease X)로 명명했다. 미지의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역체계와 공중보건체계를 염두에 둔 ‘기본 시스템’을 확립하는 게 매뉴얼을 만드는 것보다 중요하다.”
_기본 시스템 확립이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한다는 건가.
“나는 ‘개방시스템’이라고 표현한다. 단지 방역전문가, 격리병상 숫자 늘리는 대책이 아니다. 인력, 시설, 재정, 법률이나 관리, 정책이나 제도가 맞물려 돌아가도록 정비해야 한다. 특히 감염병은 관련 지식을 획득ㆍ발전ㆍ정비ㆍ강화하는 것도 필수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가지 요소, 가령 방역인력이 왜 이리 부족하냐, 예산 배정이 왜 안됐나, 공무원들 실력은 왜 없냐고 비판할 수 있지만 이는 여러 가지가 맞물린 문제다. 예컨대 이번에도 지역사회 감염 우려가 나오면서 보건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겠냐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보건소가 제 역할을 하려면 보건소의 정원도 바뀌어야 하고 보건소 인력도 새로 뽑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순히 기초체력을 기르는 게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유기적으로 강화돼야 한다.”
_이번에는 과잉ㆍ선제적 대응을 요구하는 여론이 컸고, 당국도 그런 식의 조치를 했는데…
“‘방역이나 검역, 예방은 지나친 게 낫다’는 담론이 굉장히 커진 건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부 다 금지하고 폐쇄하면 안심은 되지만 또 다른 부작용이 생긴다. 경제적인 것, 사회적인 것, 인권문제도 있지만 방역 자체로도 역효과가 난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입국금지 담론이다. 이건 과학적으로 누가 맞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알려진 지식을 기초로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견줘 결정할 문제다. 하지만 ‘당장 입국하는 사람은 많은데 왜 그냥 두냐’라는 여론이 강해지면 증상이 있는 사람들은 그런 조치를 회피하게 된다. 정말 급박한 사람들은 밀입국이라도 할 텐데 그런 경우에 감시나 파악도 안 되는 심각한 감염원이 될 수도 있다. 어떤 의미에서 메르스의 교훈이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제기하는 결과가 됐다.”
_감염병에 대한 전모가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반인은 불안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불확실성이 강한 감염병이 돌면 불안과 공포가 지배하게 되어 있다. 영국과 캐나다에서도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혐오하는 행동이 나올 정도다. 과학적으로 보면 비합리적 행동인데 이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불안과 공포가 강해지는 데 몇 가지 요인도 작용한다. 경험을 통하든 책이나 언론을 통하든 감염병에 대해 잘 알면 알수록 그게 덜해진다. 개인의 지식 수준이 높아지고 공유하는 사회적 지식기반이 튼튼해질수록 그런 종류의 공포와 불안은 줄어들 거다. 또 한 가지 감염병 대응에 대해 어떤 원리가 사회를 지배하느냐가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에는 ‘책임 피하기 프레이밍’이 모든 행위자들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_‘책임 피하기 프레이밍’이 뭔가.
“국가와 정부는 책임을 다 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고, 또 할 만큼 했다는 걸 보여주려 한다. 기업, 대학운영자와 교육청도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렇다 보니 책임 추궁을 당하지 않으려 ‘전면 폐쇄’ 같은 아주 극단적이고 근본적인 조치들이 나온다. 예컨대 귀국하는 우한 교민들의 격리 지역이 결정될 때 격리 후보지역의 정치인들이 반대 발언을 했다. 책임 문제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한다. 그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좋지만 극단적이고 전체적이고 근본주의적인 대책은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모두가 금지하면 다른 행위자도 따라하는 악순환에 빠지는데 그게 극단화하면 결국 개인 책임이 된다. 국가는 막았고, 학교는 닫았고, 모두 마스크를 쓰고 다니라고 했는데 혹시 감염이 된다면 ‘네가 잘못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방역의 개인화’라고 표현할 수 있다.”
_격리 차단과 같은 강력한 통제의 부작용은 또 없을까.
“메르스 때 주민들이 격리됐던 전라북도의 한 마을에 사태가 진정된 후 찾아가 이들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이들의 공통된 증언 중 인상적이었던 건 ‘울분’이었다. ‘국가가 우리를 버렸다, 우리는 국민이 아니란 얘기 아니냐’라는 심리였다. 다른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격리된 자신들을 나몰라라 했다, 국가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해석한 거다. 이번에 우한 교민을 한국으로 귀국시킨 건 반대의 경우다. 미국도 일본도 프랑스도 자국민을 데려가는데 만약 우리가 안 갔다면 그분들은 ‘우리는 국민이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했을 거다. 차별과 배제는 지금도 광범위하게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주노동자들은 제대로 정보를 받고 있는 것인지, 중국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는 한국에 있는 중국인들은 어떤 입장일지 생각해보자. 이들이 감염병 의심 증상이 나타나도 밝힐 리가 없지 않은가. 앞으로는 배제와 차별 문제까지 충분히 고려한 방역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_메르스 때 감염자 관리가 너무 허술했던 탓 아닌가.
“맞다. 그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다. 접촉자가 병원에 드나드는 걸 놔둬도 되냐, 닫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사람들이 얘기한다. 과학적으로는 맞지 않는 얘기다. 다녀갔다 하더라도 소독만 하면 감염 예방에 전혀 문제가 없다. 물론 불안은 이해할 수 있다. 열어두는 것보다 닫는 게 낫지만 결과적으로 어떤 일들이 생겼나. 식당의 매출이 떨어지고 경제활동이 활기를 잃었다. 코로나19 감염만 인간 삶의 고통이고, 밥벌이를 걱정하는 건 고통이 아닌가.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하면 거기에만 영향이 미치는 게 아니라 경제ㆍ사회활동, 의료ㆍ건강까지 영향 받는다. 문제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의도하지 않은 효과까지 고려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국민이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는데 그런 점에서 언론의 공론 만들기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_코로나19는 백신이 없어 사람들이 불안감을 느낀 측면은 없을까.
“일종의 과학주의에 대한 맹신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말라리아에 대한 가장 좋은 예방법은 모기장을 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방백신을 개발하라고 자꾸 주문한다. 백신이 개발되면 좋지만 개발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 많은 투자가 됐지만 말라리아 백신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감염병이 돌 때마다 백신을 만들라는 여론이 강해지면 정부는 그런 쪽으로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재원은 한정돼 있는데 그렇게 하다 보면 실제 투자돼야 할 부분에 투자가 안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_감염병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현상이 극심해진 것 같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큰 질병이 돌면 옛날에는 왕이 책임을 졌다. 최근의 현상만은 아니다. ‘감염병의 정치화’는 어떤 사회도 피할 수 없다. 이번에도 정치권에서 명백히 정치적 의도를 가진 주장을 폈다. ‘정부가 책임을 제대로 지고 있느냐’고 비판한 메르스 때의 기억 때문이다. 한 쪽에서는 ‘잘 하고 있다’는 쪽으로 담론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고, 다른 쪽에서는 ‘무능하다, 무책임하다’는 쪽의 비판을 했다. 담론의 경쟁은 좋지만 이 과정에서 실제 환자들이나 국민에게 실질적 피해가 가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구체적 비판이 아니라 ‘정부 방역 대책 파탄’ 이런 식으로 총괄적ㆍ인상적으로 비판해버리면 사람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정보도 믿지 않고 불신만 쌓인다. 최소한 언론과 전문가들은 총괄 평가는 미루고 많은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게끔 구체적이고 정확히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 다만 후에 총괄평가는 철저히 해야 한다. 복기하고 비판하고 논쟁하고 시간을 두고 집요하게 짚자. 정치적 책임은 선거를 통해 내려질 것이다.”
인터뷰=이왕구 논설위원 fab4@hankookilbo.com
정리=변한나(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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