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사회적기업 2.0]“파도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는 파력발전 기술로 ‘탄소 제로’ 꿈꿔요”

입력
2020.02.17 04:30
수정
2020.02.17 10:54
22면
0 0

인진 성용준 대표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구 인진 사무실에서 만난 성용준 대표는 “파도는 햇빛이나 바람보다 안정성이 높기 때문에 파력은 태양광, 풍력에 이어 세 번째 양질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구 인진 사무실에서 만난 성용준 대표는 “파도는 햇빛이나 바람보다 안정성이 높기 때문에 파력은 태양광, 풍력에 이어 세 번째 양질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12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친환경 소셜벤처 ‘인진(INGINE)’의 직원들이 열기로 가득 찬 회의실을 차례차례 빠져 나왔다. 화이트 보드에 그려져 있는 다소 난해한 수식과 그래프, 여러 외국인 직원들을 보니 스타트업 특유의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대기업들이 주목한 친환경 에너지 스타트업 인진은 설립 10년차를 바라보는 올해 첫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부모 반대에도 대기업 대신 택한 꿈

“2011년 회사를 창업하고 2년 후 아버지께 처음으로 인진의 명함을 드렸는데, 바로 찢어버리시더라고요.”

직원들이 빠져나간 회의실에 마주 앉은 성용준(45) 인진 대표는 담담하게 7년여 전 그날을 떠올렸다. 물론 환영 받지 못할 명함이란 건 알고 있었다. 성 대표는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2002년 ㈜SK에 입사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랑스러웠을 터다. 한국 석유화학 산업의 태동을 알린 호남에틸렌의 창립 멤버이자, 이 회사가 대림산업에 인수된 후 대표까지 역임한 부친이었다. 자신이 걸었던 길을 잘 따라오고 있다 믿었던 아들의 갑작스런 퇴사 선언에 “네가 제 정신이냐”며 나무랐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성 대표는 입사 8년 만에 SK를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대기업에선 배울 수 없다고 판단한 ‘창업을 위한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 중소기업에서 2년 동안 일했다. 성 대표 스스로도 SK에 입사할 당시 자신이 창업을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오히려 ‘SK에서 대표까지 하고 퇴직해야겠다’ 다짐하며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007~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유가 덕에 성 대표는 ‘파력발전’이라는 새로운 꿈에 눈을 뜨게 됐다.

“2008년에 유가가 배럴당 170달러까지 치솟았어요. 육상 발전소에서 케이블로 연결되지 않은 우리나라 약 300여개의 섬은 자체적으로 경유 발전기를 돌려서 전기를 충당하는데, 당시 육지 전력 생산 단가보다 무려 6배나 비싸졌죠.”

성 대표는 태양광, 풍력, 지열, 조력, 조류, 해수 온도차, 바이오매스 등 섬의 경유 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청정 에너지를 싹 뒤졌다. 그리곤 “섬에는 파력이 최선”이라고 결론 내렸다. 파력발전은 파도에 의해 부유물이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는 원리다.

그 당시엔 높은 파도를 만날 수 있는 심해에 발전 설비를 설치하고 해저 케이블을 이용해 섬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오프쇼어(Offshore)’가 유일한 파력발전 방식이었다. 이는 적어도 100억원 이상 규모의 설비 투자가 이뤄져야 가능했기 때문에 시도 자체가 언감생심이었다.

성 대표는 SK 근무 당시 케이블이 필요 없는 새로운 파력발전 방식을 개발하기 위해 신기술 사업팀에 지원했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사업성과 친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성 대표는 SK 대신 과감하게 창업의 길을 택하기로 했다.

◇미국 전문지 선정 ‘에너지 기업 톱 10’

현재 인진에는 직원 20명이 일하고 있다. 하지만 창업 첫 발을 내디딜 때는 성 대표가 중소기업에 근무할 때 뽑은 직원과 그 직원의 친형을 포함해 직원이 총 3명에 불과했다. 파력발전 문외한들끼리 수조 실험을 수없이 반복하며 해저 케이블 없이 해안에 발전 설비를 설치하는 ‘온쇼어(Onshore)’ 방식 파력발전 연구에 매달렸다.

문제는 자금이었다. 성 대표는 “연구개발은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시간을 들이면 어떤 형태로든 축적이 된다. 하지만 성숙되지 않은 시장에서, 더구나 상용화가 안 된 기술로 투자를 이끌어내는 건 시간을 들여도 불가능해 보였다”고 설립 초기를 회상했다. 벤처캐피탈(VC)에선 늘 문전박대를 면키 어려웠고, 반대를 무릅쓰고 시작한 일이라 부모님께 읍소할 처지도 아니었다. 전 직장의 상사ㆍ동료와 친구들에게 사정해 5억원 정도를 투자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사무실 수조에서 벗어나 2015년 제주도 북촌에 실제 발전 설비를 세우면서 자금 마련에 물꼬가 트였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등에서 13억원,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를 통해 4억5,000만원, 민간 VC에서 14억원, SK이노베이션에서 25억원 등 지난 5년간 꾸준히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자들이 파력발전의 가능성을 알아보기 시작한 덕분이다.

인진은 현재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고 있다. 2016년 설립한 인진 영국법인은 지난 1월 유수의 영국 업체들을 제치고 영국 대표로 모로코 환경에너지개발청(MASEN)과 파력발전 사업개발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또 지난해 12월엔 미국의 에너지 전문지인 ‘에너지CIO 인사이트’에서 ‘2019 에너지 기업 톱 10’에 선정돼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인진은 이제 지금껏 아무도 이루지 못한 파력발전 상용화에 도전한다. 올해 9월 완공을 목표로 SK이노베이션, 두산중공업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베트남 안빈섬의 ‘탄소제로섬 프로젝트’를 통해서다. 먼저 인구 500명, 면적 69핵타르(ha)의 작은 섬에 인진의 파력발전 기술로 전력을 공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꽝응아이성(省), 나아가 베트남 전역에 파력발전을 보급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다.

성 대표는 “이번 베트남 탄소제로섬 프로젝트는 파력발전 업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사람들이 파력을 사용 가능한 에너지로 인식하게 만드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인진은 올해 베트남 프로젝트 외에도 영국, 프랑스, 일본, 인도네시아, 캐나다 등 세계 각지에서 사업을 진행하며 사상 첫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 에너지 전문지인 ‘에너지CIO인사이트’에서 선정한 ‘2019 에너지 기업 Top 10’에 선정돼 커버를 장식한 성용준 인진 대표. 인진 제공
미국 에너지 에너지 전문지인 ‘에너지CIO인사이트’에서 선정한 ‘2019 에너지 기업 Top 10’에 선정돼 커버를 장식한 성용준 인진 대표. 인진 제공

◇비콥 인증, 그리고 사회적 가치

“신재생에너지 개발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이 에너지를 너무 많이 쓰는 게 문제”라는 게 성 대표의 생각이다. 성 대표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 엑슨모빌이 약 300조원에 가까운 천문학적 매출을 올리는 것에 대해 “재앙과 다름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엑슨모빌의 매출은 바꿔 말해 그만큼 지구촌이 기름과 가스를 많이 태운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성 대표는 완전한 ‘탄소제로’ 발전을 꿈꾼다. 태양광 발전마저 천연가스 발전이 내놓는 탄소의 10분의 1 정도를 배출한다고 알려져 있다. 태양광 패널의 주요 소재인 폴리실리콘을 만드는 과정에서 탄소가 나오기 때문이다. 성 대표에 따르면 파력발전의 탄소 배출은 태양광의 6분의 1 수준이다. “파력발전 설비 제조 과정에서 탄소를 회수해 만든 플라스틱을 사용하면 완벽한 ‘탄소제로’ 발전도 가능할 것”이라고 그는 내다보고 있다.

인진은 이런 친환경 비전과 함께 ‘비콥(B Corp)’ 인증도 준비하고 있다. 미국 비영리 기관인 비랩에서 부여하는 비콥 인증은 기업이 창출하는 사회·환경적 성과가 기준이 된다. 파타고니아, 탐스, 유니레버, 더바디샵 등이 대표적인 비콥 인증 기업이다.

비콥 인증을 준비하면서 실제로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들이 생기고 있다. 예를 들어 직원들 스스로 ‘친환경 에너지를 개발하는 회사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게 합당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음식 배달 과정에서 오토바이의 배기가스, 플라스틱ㆍ비닐 같은 일회용 쓰레기 등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인진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찾고 있다. 성 대표는 “인진이라는 이름은 사람을 뜻하는 한자 ‘인(人)’에 공학 기술을 뜻하는 ‘엔지니어링(engineering)’을 합친 말”이라며 “사람과 기술을 통해서 인류에게 창의적으로 공헌한다는 게 인진의 기업 정체성”이라고 설명했다. 인류에 공헌한다는 맥락에서 인진의 정관에는 초과 수익의 10%는 사회에 환원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다. 최근엔 매년 매출의 1%를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기업들의 글로벌 조직인 ‘1% 포 더 플래닛’에 가입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2017년 돌아가셨어요.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계셔서 인진이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후에도 대화로 관계를 회복할 수 없었죠. 하지만 투병 중에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제가 드린 우리 회사 단체복을 늘 입고 계셨습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떳떳해지는 방법은 지구와 인류를 위해 더 가치 있는 에너지 개발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겠죠.”

김경준 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