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에 무급휴가, 실업 수당도 못 받아” 여행사 도산 위기
서울ㆍ 제주 등 3000~5000억 원 규모 특별 융자 지원 나서
“소비자 불안감 해소가 더 큰 숙제” 지적도
중국인 단체 관광 통역 가이드인 박연화(가명ㆍ49)씨는 요즘 식당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다. 지난달 20일 국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뒤 한 달여 동안 일이 뚝 끊겨서다. 홀로 부모님과 아들을 키우는 박씨는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 개인사업자인데다 ‘불안정 직업’으로 분류돼 은행에서 대출받기도 어렵다고 한다. 박씨는 14일 “이번 달 생활비는 친구한테 빌렸는데 다음 달엔 당장 의료보험비부터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 극복을 위한 관광 업계 간담회에서 본보와 만난 박 씨를 비롯해 손은미(가명)씨 등 3명의 중국 관광 통역 가이드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이들뿐 아니라 여행사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내일투어 관계자는 “직원들에게 무급휴가를 권장하고 있어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작은 여행사 A투어는 도산 위기에 처했다. A투어 관계자는 “다음 주 직원 월급은 고객의 예치금으로 나가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설 연휴가 시작된 23일부터 이달 3일까지 12개 여행사를 대상으로 중국 인바운드(외국인 국내여행)와 아웃바운드(내국인 해외여행) 취소로 인한 피해액을 조사해본 결과, 364억 원에 달했다.
신종 코로나 확산 여파로 관광업계가 고사 위기에 처하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주요 관광지로 신종 코로나로 인한 피해를 크게 입은 서울과 제주는 관광시장 긴급 활성화 대책을 내놓으며 시장 살리기에 나섰다.
서울시는 관광업계에 5,000억 원(중소기업육성기금 1000억원ㆍ시중은행협력자금 4000억 원) 규모의 특별 융자를 지원한다. 시 소재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업체당 5억 원 이내로 13개 시중은행을 통해 연 1.5% 고정금리를 제공하는 지원책이다. 신종 코로나로 인해 직장을 잃거나 무급휴가에 들어간 관광통역사와 가이드에겐 일자리가 제공된다.
영세 여행사는 외국인 단체관광객의 안심보험 비용(여행일수 기준 1인당 700원)의 일부를 지원받을 수 있다. 시는 전시, 국제회의 취소를 막기 위해 12월까지 행사를 취소하지 않고 연기하면 기존보다 10% 많은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신종 코로나 상황이 진정되면 가장 먼저 중국을 방문해 중국인 관광객 유치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중국 여행사를 만난 뒤 서울 관광 설명회도 열 계획이다. 신종 코로나로 끊긴 중국 관광객을 서울로 끌어 모으기 위해서다.
제주도 5,700억원의 관광진흥기금을 긴급 마련해 특별 융자에 나섰다. 3,000억 원을 신규 특별융자 형태로 지원하고 2,700억 원을 기존 융자업체에 대한 상환 유예 방식으로 지원한다. 2015년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특별 융자로 지원한 1,300억원보다 4배 많은 금액이다.
그만큼 제주는 신종 코로나로 관광 시장에 타격을 크게 입었다. 제주시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 여파로 무비자 입국이 중단된 지난 4일부터 12일까지 제주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1,187명으로, 하루 평균 100명 남짓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2만4,148명의 중국 관광객이 몰려 하루 평균 2,683명이 제주를 찾았던 것과 비교하면 95.1%나 줄었다. 제주는 제주관광진흥기금 특별융자 및 상환유예 지원 계획을 17일 도청 인터넷 홈페이지(https://www.jeju.go.kr)를 통해 공고하고 20일부터 5월 18일까지 3개월간 신청을 받는다.
지자체들이 관광업계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분위기 전환이 급선무라고 입을 모았다.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해소돼야 관광업계가 자생적으로 활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철원 경희대 컨벤션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 불안감 해소를 위해 지차제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며 “숙박 업소에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세이프 앤 클린(safe and clean)’ 인증을 해 불안감을 더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국제회의 전문기획사 모임인 한국PCO협회 석재민 회장은 “행사는 연기하면 사실상 취소된다고 봐야 한다”며 “행사 연기가 아니라 행사가 제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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