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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촬영 돼지슈퍼 동네 “가난 구경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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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촬영 돼지슈퍼 동네 “가난 구경났나요”

입력
2020.02.18 04:30
수정
2020.02.18 07:2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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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상 이후 관광객 몰려와… 市는 관광 코스 만들 계획까지

“반짝할 게 뻔한데…” 생활 불편 걱정에 재개발 악영향도 우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 14일 방문한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돼지슈퍼 앞에 일본 방송국 관계자 두 명이 서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지난 14일 방문한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돼지슈퍼 앞에 일본 방송국 관계자 두 명이 서 있다.

지난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아현동 ‘돼지슈퍼’ 맞은편에서 외국인 관광객 대여섯 명이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슈퍼 옆에 막 도착한 미니 버스에서도 한국인 10여 명이 줄줄이 내려 주변을 촬영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시아영화 최초의 오스카 4관왕을 달성한 이후 매일 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돼지슈퍼에서는 극중 기우(최우식)가 박 사장(이선균)네 가정 교사 제의를 받는 장면이 촬영됐다.

국내외에서 쏟아지는 관심과 끊임 없는 방문 행렬에도 슈퍼 사장 이정식(77)씨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최근 서울시가 이 가게를 포함한 서울 내 기생충 촬영지를 관광 코스로 개발하겠다고 발표한 게 이유였다. “우리 가게가 기생충에 나온 것은 영광인데 관광지로 만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이씨는 고개를 저었다.

기생충 촬영지를 관광 코스로 개발하겠다는 서울시 계획에 정작 해당 동네 주민들이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생활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이라며 불편한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17일 서울시와 주민 등에 따르면 시는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서 돼지슈퍼를 포함한 기생충 촬영지를 서울의 주요 관광 코스로 소개할 예정이다. 인근 상권과 촬영지를 엮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오스카 수상에 일조했다는 뿌듯함 뒤로 생활 전반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한다. 개별적으로 오는 관광객을 막을 수야 없지만 혹시 단체 관광객이 밀물처럼 밀려올지 몰라서다. 돼지슈퍼 사장 이씨는 “사람들이 슈퍼 하나 보겠다고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까지 찾아오겠냐”며 “주변에 이렇다 할 관광시설도 없는데 반짝 하고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생충 이전에도 영화나 드라마 흥행에 기대어 지자체들이 추진한 ‘반짝 관광지’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흐지부지 된 경우는 부지기수였다.

여기에 관광의 ‘대상’도 주민들에겐 민감하다. 기생충 속 돼지슈퍼가 속한 동네가 상징하는 건 가난이다. 빈부 격차를 드러내기 위해 선택된 장소인 데다 자하문터널 입구 계단처럼 공공시설물도 아니다. 주민 염모(65)씨는 “관광객에게 이 동네의 가난을 전시하기라도 하겠다는 거냐”면서 “집이 낡아 방음도 잘 안 돼서 더욱 걱정”이라고 말했다.

최근 겨우 불씨를 살린 재개발사업이 또 좌초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돼지슈퍼가 있는 아현동 699번지 일대는 2000년대 재개발 계획이 수립된 후 20년째 방치돼있다. 복잡한 토지 소유 관계로 인해 번번이 개발이 미뤄졌다. 옆에서는 고층 아파트들이 쭉쭉 올라가는데 이 지역만 낙후된 섬처럼 고립됐다.

[저작권 한국일보] 별도의 주차 시설이 없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좁은 골목에 자동차 여러 대가 늘어서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별도의 주차 시설이 없는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한 좁은 골목에 자동차 여러 대가 늘어서 있다.

그러다 지난해 주민 63.5%가 재개발에 찬성하며 다시 추진할 동력이 보이는 상태다. 재개발 구역 지정은 주민의 3분의 2(66.7%)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 지역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서울시의 관광 코스 개발 계획이 발표된 뒤 재개발을 걱정하는 주민 문의가 쏟아진다”고 전했다.

서울시도 주민들의 이런 불안감을 모르는 건 아니다. 시 관계자는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게 아니고, 소음이나 재개발 등에 관한 우려를 충분히 인지해 주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겠다”고 말했다.

글ㆍ사진=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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