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밀레니얼세대
세대 문제는 어느 사회든 뜨거운 쟁점이다. 까닭은 대중적 관심에 있다. 누구든 특정 세대에 속해 있는 만큼 세대 이야기에는 적지 않은 이들이 귀 기울인다. 그러나 세대가 학문적으로 많이 연구되는 주제는 아니다. 까닭은 포괄적 개념이라는 데 있다. 세대 안에는 계급ㆍ이념ㆍ젠더 등의 균열들이 존재하고, 이 변수들이 세대 변수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세대를 주목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첫째, 변화의 속도다. 21세기에 들어와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사회변동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이러한 흐름은 세대 간 사회ㆍ문화적 차이를 더욱 벌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둘째, 이 기획의 성격이다. 이 기획의 목표가 가까운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 있는 만큼, 이 미래의 주역인 젊은 세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밀레니얼세대의 등장
21세기에 들어와 젊은 세대를 지칭하는 말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내 시선을 끈 이름들은 미국의 ‘밀레니얼(Millennial) 세대’, 일본의 ‘사토리(さとり) 세대’, 중국의 ‘바링허우(八零後) 세대’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개념이 밀레니얼세대다.
밀레니얼세대는 프리랜서 작가들인 월리엄 스트라우스와 닐 하우가 주조한 말이다. 이들은 미국에서 1987년 유치원에 들어가 2000년쯤 고등학교를 졸업할 이들을 주목했다. 밀레니얼세대는 흔히 1982년에서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지칭한다. ‘Y세대’, ‘구글세대’, ‘에코부머 세대’, ‘테크 세대’라고도 불린다.
프리랜서 작가들인 린 랭카스터와 데이비드 스틸먼은 ‘밀레니얼 제너레이션’에서 밀레니얼세대의 특징으로 일곱 가지를 들었다. 첫째, 부모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둘째,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다는 권능감이 강하다. 셋째, 개인적 성공과 사회적 의미를 동시에 추구한다. 넷째, 자신의 역할에 대해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다. 다섯째, 정보기기와 멀티태스킹에 능숙하다. 여섯째, 소셜네트워크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에 익숙하다. 일곱째, 온라인 게임 등을 통해 팀워크를 익혔기에 협업을 잘 해낸다.
이러한 밀레니얼세대의 특징을 선구적으로 주목한 이는 경영컨설턴트 돈 탭스콧이다. 그는 ‘N세대의 무서운 아이들’, ‘디지털 네이티브’를 발표해 정보사회의 진전과 함께 등장한 ‘N세대’인 ‘넷세대(Net Generation)’의 특징을 분석했다. 넷세대는 무엇보다 자유와 개방성을 중시하고 정보사회에 걸맞은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과 다른 나라들에서 관찰할 수 있는 젊은 세대의 공통점 및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사토리세대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후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다. 이 세대의 특징은 안정된 직장은 물론 출세에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깨달음’을 뜻하는 사토리란 말이 보여주듯 물질적 욕망에 달관한 세대가 바로 이들이다.
중국의 바링허우세대는 덩샤오핑의 ‘한 가구 한 자녀 정책’ 실시 이후인 1980년대에 출생한 세대다. 이 세대의 특징은 외동이기 때문에 조부ㆍ조모ㆍ외조부ㆍ외조모ㆍ아버지ㆍ어머니로부터 모두 경제적 지원을 받는 이른바 ‘식스 포켓’의 풍족함을 누려왔다는 데 있다. 중국식 개인주의를 이끄는 ‘샤오황디(小皇帝)’ 또는 ‘샤오궁주(小公主)’가 바로 이들이다.
나라마다 이렇게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세대 담론에 그 사회의 경제변동이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밀레니얼세대의 등장이 과학기술혁명에 힘입어 지속적인 성장을 이뤄온 미국 경제에 조응한다면, 사토리세대의 출현은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20년’의 일본 경제에 상응한다. 그리고 바링허우세대의 등장은 1980년대 개혁ㆍ개방 이후 급부상해온 중국 경제에 대응한다. 세대 담론의 경제학이라 할 수 있다.
◇2020년대와 밀레니얼세대의 미래
2020년대 밀레니얼세대의 미래는 그렇다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앞으로 10년은 전기 밀레니얼세대가 30대의 중심을, 후기 밀레니얼세대가 20대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어느 나라든 밀레니얼세대가 젊은 세대의 다수를 차지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밀레니얼세대는 협업에 익숙하지만 개인주의를 중시한다. 이 점을 특히 고려할 때, 20,30대의 사회조직과 문화생활에서는 공동체주의의 구심력보다 개인주의의 원심력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어느 사회든 개인주의의 성장은 비가역적이고, 갈수록 만개할 게 분명해 보인다.
그 동안 넷세대와 밀레니얼세대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일각에선 넷세대가 나밖에 모르는 ‘미 세대(me generation)’이고, 컴퓨터와 인터넷에 중독됐고, 혼자 살아가려는 독립정신이 부족한 이들이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밀레니얼세대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볼 때, 밀레니얼세대의 의식과 행동에는 긍정적인 특징과 부정적인 특징이 동시에 관찰된다. 주목할 것은 밀레니얼세대에 대한 이러한 평가들이 앞선 세대들의 사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우 세대의 변화는 전통세대(1946년 이전 출생), 베이비붐세대(1946~64년생), X세대(1965~81년생), 밀레니얼세대로 이어져 왔다. 대체적으로 선행세대는 후속세대를 분방하다고 본 반면, 후속세대는 선행세대가 권위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세대 담론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전체적 동질성을 강조한 나머지 세대 내 이질성을 과소평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밀레니얼세대 안에는 이른바 ‘위너 그룹’과 ‘루저 그룹’이 존재한다. 이러한 균열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능력 못지않게 부모의 영향력이다. 랭카스터와 스틸먼은 밀레니얼세대가 부모와 탯줄로 연결돼 있다고 말하지만, 이 탯줄의 다른 이름이 부모의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이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말한 세습자본주의의 경향은 위너 그룹과 루저 그룹으로의 밀레니얼세대의 분화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밀레니얼세대에 대한 전망은 이 세대에 대한 특별한 정책적 배려를 요구한다. 먼저 갈수록 구조화되는 불평등에 대한 적극적 대응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시장 안과 밖에서의 이중적 분배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동시에 젊은 세대에 대한 맞춤형 대책을 고려해야 한다. 청년실업 대책에 더하여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교육정책 및 문화정책을 설계하고 시행해야 한다.
◇한국사회와 밀레니얼세대
우리 사회 밀레니얼세대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경영학자 이은형은 ‘밀레니얼세대와 함께 일하는 법’에서 지구적 밀레니얼세대의 등장과 함께 하는 한국의 밀레니얼세대의 특징을 아홉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내게 선택의 자유를 달라. 둘째, 너의 취향도 옳고 나의 취향도 옳다. 셋째, 진정성이 있을 때 마음을 연다. 넷째, 재미와 의미, 어느 것도 놓칠 수 없다. 다섯째, 소유보다는 공유, 혼자이지만 협업은 잘 한다. 여섯째, 성장을 중시하고 열심히 학습한다. 일곱째, 속도와 혁신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여덟째, 공유가치가 최우선이다. 아홉째, 이제는 모두가 전문가이자 글로벌인재다.
최근 젊은 세대의 삶과 문화를 지켜보면 설득력 있는 분석이다. 우리 사회 밀레니얼세대 역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이자 개인주의 세대다. 여기에 더하여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이들의 현실세계과 내면세계다.
먼저, 우리 사회 밀레니얼세대는 청년실업의 위험 앞에 노출돼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N포 세대’는 이들이 처한 현실을 상징한다. 밀레니얼세대, 사토리세대, 바링허우세대와 비교할 때 N포 세대의 처지가 가장 딱해 보여 기성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갖는 안타까움이 작지 않다.
나아가, 밀레니얼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의 하나는 치열한 경쟁에서의 공정한 룰이다. 입시에서 취업까지 무한 경쟁이 일상화된 능력주의 사회에서 공정한 규칙의 존중은 훼손돼선 안 될 합리성과 정당성의 마지막 거점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에 대해 적지 않은 젊은 세대가 분노한 까닭도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0년대는 밀레니얼세대가 우리 사회의 중심세대로 부상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이들이 자신의 뜻을 마음 놓고 펼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당연한 책무다. 청년실업 대책과 공정사회 구현을 위한 더욱 전향적인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김호기의 굿모닝 2020s’는 2020년대 지구적 사회변동의 탐색을 통해 세계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한국일보> 연재입니다. 매주 화요일에 찾아옵니다. 다음주에는 ‘세계화’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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