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후 ‘문재인 탄핵’ 벼르는 보수야당
공소장 어디에도 대통령 범죄 없어
‘박근혜 탄핵’ 앙갚음 악순환 끊어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을 생각하면 불안감이 앞선다. 누가 이기든 극심한 후유증을 피할 수 없을 거라는 걱정에서다. 과연 우리 사회가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이 똘똘 뭉쳐 서로를 거꾸러뜨려야 할 적으로 여기는 지금의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공존과 다양성 추구를 위해 선거법을 바꿨지만 둘 사이 거리는 더 멀어졌다. ‘중도’를 표방한 안철수가 맥을 못 추고, 유승민이 ‘보수의 가치’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사정도 이를 웅변한다.
엄습하는 불안감의 근원은 ‘정치 보복’이다. 임기가 갓 절반 지났을 뿐인데 ‘대통령 탄핵’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다. 여권에선 총선이 끝나면 윤석열 검찰총장을 축출할 계획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선거 후 국민을 기다리는 것은 끝 모를 보복의 악순환이다.
문재인 대통령 탄핵 주장은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여파다. 공소장에 대통령이 다수 언급되고 청와대 여러 부서가 연루된 데 터잡고 있다. 문 대통령의 ‘30년 지기’인 현 울산시장을 당선시키려고 청와대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게 보수 야당의 주장이다.
하지만 공소장 어디에도 대통령의 직접적 연관성을 드러내는 대목은 없다. 과연 대통령이 몰랐을 리 있겠느냐는 막연한 추측을 근거 삼고 있다. 물론 대통령이 연루돼 있다면 책임져야겠지만 아직 수사는 마무리되지 않았고 기소된 측근들 재판은 시작도 안됐다. 성급할뿐더러 정치 공세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야당에선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여당 지지 발언으로 탄핵 소추당한 노무현 대통령 사례와 비교해 상황이 더 엄중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 대통령 탄핵 사유는 선거법 위반뿐 아니라 불법 대선자금 등 여러 건이었다. 그마저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해 시민들의 탄핵 반대 시위가 거리를 덮었다. 검찰의 측근 비리 수사 때 23.6%로 추락한 대통령 지지율은 국회 탄핵안 가결 직후 되레 39.4%로 치솟았고, 헌재 기각 후에는 52.4%로 뛰어올랐다. 민심과 동떨어진 ‘정치 탄핵’은 결국 총선에서 야당 참패로 귀결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 총선에 개입한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사건과 비교해 문 대통령의 죄질이 무겁다는 주장도 나온다. 2심까지 진행된 판결문을 보면 박 전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친박계 공천을 직접 지시하고 수시로 보고를 받은 것으로 나온다. “유승민을 빼라”는 지시도 여러 차례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 진술을 거부했지만 정무수석 등 참모들이 일관되게 진술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기도 하는데 최순실을 위해 대기업에서 수백억 원을 뜯어내는 등 헌법과 법률 9건을 위배한 사건을 동렬로 놓는 것은 터무니없다. 탄핵도 당시 야권에서 거론한 게 아니다. 그가 거국 내각, 임기 단축 등의 요구를 거부하자 수백만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탄핵된 것이다.
이런 전후 사정을 알면서도 보수 야당이 문재인 탄핵을 주장하는 이유는 오로지 ‘박근혜 탄핵에 대한 보복’이다. 일부 보수 인사들은 “박 전 대통령을 ‘정치적 단두대’로 몰아가 치욕을 준 현 집권세력에게 ‘문재인 탄핵’으로 되갚아주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전임 대통령을 탄핵한 게 불과 3년 전이다. 이명박ㆍ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동시 구속 사태는 불행한 일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똑같이 당해 보라”며 탄핵과 단죄를 외치는 것은 옳지 않다. 설령 보수 야당이 현 정부를 심판한다 한들 그 다음에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또다시 보복의 앙갚음을 하지 않겠나.
보수 야당은 현 정권을 무너뜨릴 생각만 할 게 아니라 권력을 잡으면 어떻게 나라를 이끌지를 고민하는 게 현명하다. 정권을 다시 잡으면 일자리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검찰 권력은 이용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북핵 문제는 어떻게 풀어 나갈지 머리를 싸매야 한다. ‘문재인 타도’만 외치는 미래통합당은 평생 야당만 할 것처럼 군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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