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민영휘의 후손들이 친일재산이라는 이유로 국가에 귀속된 토지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가 최종 패소했다. 대법원은 “법리 오해가 있다”는 민영휘 후손 측 상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원고 패소 판결한 항소심 판단을 확정했다.
17일 ‘국민일보’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최근 민영휘의 후손인 유모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 영보합명회사(영보)가 “서울 강남구 세곡동 땅 1492㎡(약 451평)에 대한 소유권을 돌려 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을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항소심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을 때 본안 심리를 열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것이다.
민영휘는 일제에 조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1910년 조선총독부에서 자작 작위를 받은 대표적 친일파다. 그는 ‘조선 최고의 땅 부자’로 불렸다.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는 2007년 그를 재산환수 대상이 되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판단했다.
세곡동 땅을 놓고 국가와 소유권 분쟁을 벌인 유씨는 민영휘의 셋째 아들 민규식의 의붓손자다. 민규식은 일제 토지조사령에 따라 문제의 세곡동 땅을 소유하게 됐다. 유씨 측은 1933년 민규식이 소유한 부동산매매회사 영보에 이 땅을 출자했고, 소유권이 후손인 자신에게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 땅은 1949~50년 농지개혁법이 시행되면서 국가 소유가 됐다.
민규식의 후손들은 세곡동 땅이 제대로 분배·상환되지 않았고, 이럴 경우 당시 농지개혁법에 따라 원소유자에게 소유권이 반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씨 어머니 김모씨가 2013년 제기한 소송에서 패소하자 유씨는 2017년 “행정절차상 오류로 세곡동 땅이 국가에 잘못 귀속됐다”며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1심은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민규식에 대해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고 본 점을 인정하면서도 “민규식이 모토지를 사정받을 당시 이미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고, 민규식이 민영휘로부터 증여받은 것이라고 볼 만한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세곡동 땅이 영보에 출자됐다는 증거가 없다”며 국가 승소로 판결했다. 친일재산 여부를 판단하지 않더라도 토지 소유권의 전제가 되는 출자 기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김정현 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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