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드라마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마의 시청률’로 여겨지던 10%대는 물론 20%를 넘어서는 작품들이 잇따라 탄생 중이다. 드디어 드라마 시장의 오랜 위기가 끝난 걸까.
스타트를 끊은 작품은 지난 해 9월부터 11월까지 방영된 KBS2 ‘동백꽃 필 무렵’(이하 ‘동백꽃’)이었다.
방영 당시 단 6회 만에 10%대를 돌파한 ‘동백꽃’은 최종회 23.8%라는 기록적인 성적을 남겼다. 이 같은 수치는 지난 해 방송됐던 지상파 미니시리즈들 가운데 최고 시청률이다.
안방극장 드라마의 부활을 알린 ‘동백꽃’의 기세는 중단 없이 올해로 이어지고 있다. SBS ‘스토브리그’는 4회 만에 10% 벽을 돌파한 이후 최종회 자체 최고 19.1%을 기록하며 막 내렸으며, tvN ‘사랑의 불시착’ 역시 8회 만에 시청률 10%를 가뿐히 넘어서는 데 성공했다.
특히 ‘사랑의 불시착’은 최종회 시청률 21.7%를 기록하며 역대 tvN 드라마 사상 최고 시청률 기록을 세웠던 ‘도깨비’(20.5%)를 뛰어 넘어 새 역사를 썼다.
현재 방송 중인 SBS ‘낭만닥터 김사부’의 경우, 첫 방송부터 14.9%를 기록하며 남다른 행보를 과시하고 있다. 8회때 20%를 돌파하는 등 12회까지 방송되는 동안 평균 시청률 21.9%를 기록 중이다.
JTBC ‘이태원 클라쓰’의 기세 역시 만만치 않다. 11.6%(6회 기준)를 기록 중으로, “시청률 10%가 넘으면 일일 포차를 운영 하겠다”던 박서준의 공약이 단 5회 만에 현실화됐다. JTBC의 최대 흥행작이었던 ‘SKY캐슬’의 상승세보다도 빠르다.
이 외에도 매 작품 10~30%대 시청률을 보장받고 있는 일일극과 주말극의 흔들림 없는 ‘시청률 지키기’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급변한 시청 패턴과 OTT 시장의 확대 등으로 10%대 시청률을 넘는 드라마들이 손에 꼽을 만큼 드물어지면서, ‘시청률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는 시선이 팽배해진 현 드라마 시장에 갑작스럽게 황금기가 되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앞서 ‘동백꽃’의 성공 사례로 알 수 있듯이 ‘이야기의 힘’을 앞세운 양질의 정통 드라마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프로야구계의 이면을 실감나게 파헤친 ‘스토브리그’는 리얼리티에 기반한 스포츠 드라마의 부활을 알린 좋은 작품으로 평가 받았다. ‘사랑의 불시착’은 그간 국내 드라마 시장에 없었던 ‘남북 로맨스’라는 참신한 소재로 화제성과 재미를 함께 잡았다. 철저한 사전 조사와 전문가의 자문을 통한 북한의 현 시대상을 환기했다는 점 역시 ‘사랑의 불시착’이 남긴 성과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좋은 작품들의 연이은 탄생이 그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던 드라마 시청률을 끌어올린 이유”라며 “시장 환경과 상관없이 좋은 작품은 누구라도 본다는 것을 증명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지금의 시청률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에 대해선 신중하게 바라봤다. “몇몇 좋은 작품들이 높은 시청률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전반적인 흐름이라고 보긴 어렵다”면서 “단적인 예로 수목드라마 블록은 여전히 고전 중이다. 이후에도 좋은 작품이 꾸준히 탄생하지 않는 이상, 일시적 현상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드라마 시장에 일찌감치 찾아온 봄이 당분간 계속될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 단 분명한 건 있다. 시청자들이 양질의 정통 드라마는 귀신같이 골라본다는 것이다.
지금의 시청률 호황을 이어가려면 자극적인 설정의 이른바 ‘막장 드라마’로 재미를 보려는 얄팍한 꼼수 대신, 참신한 소재와 깊이 있는 주제에 충실한 정공법을 더욱 필요로 하는 이유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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