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문재인정부의 19번째 부동산대책이 20일 나왔지만,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부동산 시장은 한마디로 ‘광풍’이다. 정부의 잇따른 대책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부동자금이 게릴라 식으로 아파트시장으로 쏠리면서 집값을 올리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실물경기 흐름에 민감하게 움직였던 과거의 사례와는 크게 동떨어지는 현상이다. 특히 서울지역에서는 아파트 가격에 따른 계급갈등 우려까지 나오면서 아파트의 정치ㆍ사회화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 아파트를 안전자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지방 사람까지 상경투자에 나서고 30대가 추격매수에 동참하면서 급등세를 이어갔다. 이중 30대의 갭(gap) 투자는 아파트 가격 급등에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통계적으로 확인됐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 건수는 총 7만1,734건이었고 이중 30대가 2만691건을 매입해 28.8%를 차지했다. 전 연령대를 통틀어 최대 건수를 기록한 것이다. 자본력이 부족함에도 부동산 시장에서 30대가 돌풍을 일으킨 것이다. 청약으로는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불안감에 빚을 내서 샀다는 얘기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다 집을 산다), 젊집사(젊을 때 집을 사라), 청무피사(청약은 무슨, 피(feeㆍ웃돈) 주고 사라), 부포족(부동산 포기족)이라는 다양한 유행어가 나왔다. 30대의 움직임에 특히 관심이 많은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부동산학 박사)을 만나 요인을 짚어봤다.
-부동산 시장에 그야말로 광풍이 분다.
“영화 ‘관상’에서 배우 송강호는 계유정난(1453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사건)에 연루돼 아들을 잃고 바닷가에 칩거하면서 한탄을 한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봤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저 출렁이는 파도만 봤을 뿐이지, 파도를 만드는 것은 바람인데 말이오.’ 그의 말처럼 부동산시장에 대해서 겉으로 드러난 현상보다 좀 더 본질적인 측면을 고찰해야 한다. 파도보다 바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얘기다. 분명 지금 부동산시장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트렌드 변화에 대한 분석이 중요하다. 요즘 부동산시장 흐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모바일 스트라이커(mobile striker)’처럼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모바일 스트라이커’는 어떤 의미인가.
“손흥민 선수를 ‘모바일 스트라이커(기동력 있는 공격수)’라고 표현한다. 지난번에 최고 시속 33.4㎞로 그라운드를 누비지 않았나.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가 된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 시대가 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획기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정보전달이 빠른 만큼 사람들도 전광석화처럼 빨리 움직인다. 포노 사피엔스 시대의 정보전달은 신문이나 잡지 등 오프라인에 비해 속도 면에서 혁명적인 변화다. 젊은이들이 부동산 시장에 뛰어든 것도 스마트폰을 통한 정보 접근의 용이성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확실히 정보의 유통방식이 크게 바뀐 것 같다.
“스마트폰 보급이 보편화하면서 부동산 풍속도가 많이 달라졌다. 우선, 시장 참여자들이 쉽게 떼를 지어 움직이는 군집행동 현상이 자주 나타난다. 이 같은 쏠림현상으로 요즘 수용성(수원 용인 성남) 아파트시장에서 볼 수 있듯이 게릴라식으로 투자자들이 이동하면서 요동친다. 그리고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상호작용을 통해 재해석하고 대응논리를 만들어내는 복잡적응계 시장이 형성되었다. 시장의 지능이 많이 높아진 것이다. 또 하나, 정보의 취득 창구가 바뀌면서 부동산 의사결정 과정에서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미디어에 많이 의존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 시절에는 정보 취득의 주요 창구가 친인척들의 입이었다. 지금은 카페나 블로그,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정보를 취득한다. 제도권 전문가보다 SNS에서 활동하는 고수의 말을 더 귀담아듣는다. ‘갭 가격’이라는 말이 있다. 매매금액에서 전세보증금을 뺀 순 투자 금액으로 갭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일러준다. 부동산 모바일 앱에서 아파트 갭 가격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부동산에 지식이 없더라도 누구나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일종의 채권, 금 사듯이 투자할 수 있는 대중화가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전국 아파트 쇼핑족이 등장, 곳곳에서 활개를 친다.”
-이럴수록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요즘 SNS에 검증되지 않은 자극적인 정보들이 넘친다. 이럴수록 정보를 걸러내는 여과기능이 갈수록 절실해진다. 부동산 소비자들은 현명해져야 한다. 균형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SNS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한쪽을 너무 믿지 않는 것이 좋다. 얘기를 듣더라도 가려서 들어야 한다. 전문가든, 고수든 한 사람의 얘기에 함몰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 여러 사람의 중지를 모으고 학습량을 늘려 내 스스로 사고하는 비판능력을 길러야 한다. 혼돈의 시대에 의사결정 능력도 실력이다.”
-경제가 엉망인데 아파트값만 오른다.
“지금 아파트 시장은 과거와는 다르다. 실물 경제하고 따로 논다. 돈의 힘으로 가격을 부풀리는 유동성 장세의 성격이 강하다. 유럽의 전설적인 투자자인 앙드레 코스톨라니는 경제와 주가를 ‘산책 나온 개’로 비유했다. 주인은 경제이고 개는 주가일 것이다. 주인이 개 줄을 쥐고 있으니 멀리 보면 동조화 현상이 나타날 것이지만, 단기적으로는 괴리 현상이 심하다. 요즘 집은 삶의 안식처라는 본래적 기능보다는 교환가치를 중시하는 투자자산으로 변질된 것이 특징이다. 주택시장 참여자들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가처럼 행동한다.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레버리지(leverage)도 많이 쓴다. 요즘 30대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영끌’은 이런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해 30대들이 대거 부동산 구매에 뛰어든 것이 통계수치로 확인됐다.
“불과 6~8년 전만해도 30대는 부동산을 바라보는 시각은 부정적이었다. 지금의 30대는 부모세대가 주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이다. 700만명에 달하는 베이비부머는 2012년 극에 달했던 하우스푸어 사태로 아픔을 겪었다. 중대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급락하면서 부동산 불패신화에 금이 갔다. 한평생 아파트 평수 키우기에 올인했던 부모세대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이런 모습을 본 30대에게 부동산은 애정보다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집값이 계속 오르자 생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청약제도까지 자신들에게 불리해지자 집을 서둘러 구매에 나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현상은 첫 내집 마련 시기가 갈수록 늦어지고 있는 통계와는 대비되는 것이다. 지난해 국토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 안에 생애 최초로 주택을 마련한 가구주 평균 연령은 43.3세였다. 2008년에는 40.9세였다. 만혼에 자본축적이 늦어지다 보니 생긴 현상이다.”
-결국 투기적 성격 아닌가.
“30대는 한참 분가할 때로 주택에 관심을 가질 수 있지만 지금의 주택구입 열풍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 불안과 초조감에 따른 비이성적 과열의 산물이다. 과도한 대출을 이용한 집 사기는 주택가격 우상향에 대한 무모한 기우제인 것 같다. 대상만 다를 뿐 비트코인 투자를 연상시킨다. 물론 30대는 부동산에 대한 접근은 기존 세대와는 달리 균질적이지 않다. 한쪽에는 6포세대나 부포족이 있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젊집사’를 외치고 ‘영끌’을 동원한다. 일부는 부모세대의 부동산 욕망을 닮아가고, 때로는 오히려 더 거칠고 노골적이기까지 하다.”
-젊은이들의 생각이 이렇다면 미래가 걱정이다.
“30대의 등장을 너무 색안경을 쓰고 볼 필요는 없다. 사회든 경제든 양면이 있는 법이다. 30대의 집 사기는 주택시장에서 세대교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베이비부머 이상 세대들이 보유한 주택을 누군가는 사줘야 한다. 베이비부머가 갖고 있는 집만해도 전체 주택의 18%에 달한다. 집을 전자제품이나 승용차처럼 해외에 수출을 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어찌보면 30대의 집사기는 주택시장에서 자연스러운 손바뀜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과도한 대출을 이용한 집사기가 걱정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하우스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신축 아파트값이 많이 오른 것이 30대 때문일까.
“재작년 하반기부터 모델하우스에 30대가 40대보다 많다는 이야기가 들려 왔다. 30대의 특징이 있다. 일단 ‘몸테크’를 잘 안하려 든다. 몸테크는 몸과 재테크(財tech)의 합성어이다. 낡은 재건축 아파트에 살면서 내 집도 마련하면서 돈도 버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걸 용납하지 못한다. 현재주의나 욜로(YOLO)적 가치관이 아파트에도 드러난다. 신축에 대한 선호가 매우 강하다. 두 번째는 맞벌이 부부가 늘었다. 아침에 통근하는 여성의 비율이 엄청 늘었다. 외곽을 멀리하고 도심을 선호하는 현상이 예전에 비해 강해진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은 아침 6시에 일어나 광역버스에 몸을 싣고 출근했다가 밤 늦게 퇴근하는 방식으로 가장만 희생하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30대를 중심으로 맞벌이 부부가 늘어 도심, 신축, 역세권을 선호한다.”
-그러니까 서울이라면 다 뛰는 건가.
“강남 못지 않게 많이 오른 곳이 강북 도심 지역 아파트다. 지난해 30대가 시장을 주도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강북지역이 많이 올랐다. 물론 을지로, 광화문 일대 대규모 오피스 타운이 개발되면서 직주근접형 수요가 많아진 것도 한 요인이다. 서울 아파트 값이 하우스푸어 사태가 극에 달했던 2012년 4분기에 비해 2배 정도 올랐다. 지역에 따라 많게는 2.5~2.8배, 적게는 1.8배 오른 곳도 있다. 참여정부 당시 강남불패가 유행했다면 지금은 서울불패가 더 자주 회자된다. 요즘은 강남북 동조화 현상이 나타난다. 서울 아파트시장은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걸 많이 느낀다.”
-베이비 부머들도 집을 줄이지 않는다.
“주택 시장의 가장 큰 착각이 나이 들면 집을 줄인다는 거다. 물론 거동이 불편할 정도가 되면 집을 줄이겠지만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춘다. 지방의 대도시를 보면 베이비부머의 비율이 높을수록 그 도시의 아파트값이 올랐다. 집을 노후 수단으로 삼는 게 두드러진 특징이다. 과거처럼 여윳돈으로 상가나 외곽에 토지를 사지 않고 도심 아파트만 매입하려고 한다. 베이비부머 뿐만 아니라 젊은 층이나 중년층들도 아파트에만 눈독을 들인다. 아파트 가격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선호를 보면 우리가 ‘아파트교’ 신도가 된 게 아닌가 생각도 든다. 그래서 재건축을 빨리 하기 위해 자기 집이 빨리 낡으라고, 천장에 물 새라고 기도하고 안전진단을 통과했다고 경축 플래카드를 내건다. 공동체가 어떻게 되든, 내 집 값만 오르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강하게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파트는 홈보다는 하우스 성격이 강하다. 홈은 삶의 안식처고 하우스는 사고파는 투자재 개념이다. 집을 하우스로 바라보면 반드시 하우스 푸어 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왜 아파트 인기가 쉽게 식지 않나.
“개인적으로 세 가지를 꼽고 싶다. 첫째, 아파트는 비교적 간단한 가치저장 수단이라는 점이다. 아파트는 표준화ㆍ규격화되어 있어 환금성이 뛰어난 원시화폐의 기능을 한다.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인지 구두쇠’ 시대인 요즘에 아파트는 그 가치를 발휘한다. 지능이 100이든, 150이든 성공에 큰 차이가 없다. 둘째, 아파트는 편의를 극대화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바쁜 현대인에게 적합한 주거공간이다. 우리나라 주거의 역사는 여성들의 동선이 짧아지는 과정이다. 압축공간인 아파트는 맞벌이 부부시대 가사노동에서 필요한 이동거리를 최소화한다. 하지만 단독주택이나 전원주택으로 갈수록 동선이 길어진다. 여성들이 유난히 아파트를 선호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아파트는 편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래서 이른바 ‘편리미엄’, 즉 편의가 프리미엄이 되는 세상이다. 셋째, 아파트는 이제 복합거주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요즘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커뮤니티형 아파트(4세대형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아파트단지는 거대한 ‘콘크리트 캐슬’을 연상시킨다. 지하층에 찜질방, 수영장, 헬스장, 골프연습장, 레스토랑까지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문화강좌까지도 자체적으로 연다. 폐쇄형 커뮤니티를 갖춘 대규모 아파트단지는 유럽의 거대한 성(城)같다. 모든 현상에 원인이 있듯이 한국에서 아파트 열풍은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본이 넘치는 시대 가치저장수단이자 효율적 공간, 편리한 문화생활에 대한 니즈(needsㆍ수요) 등이 결합되어 나타난 것 같다.”
-부동산이 정치화한 것 같다.
“부동산 시장을 지켜본 지 올해로 26년째다. 더 노골화하는 욕망이 지배하는 요즘 부동산시장을 보면 당혹스럽고 착잡할 때가 많다. 부동산이 어느새 경제학이 아니라 사회학으로 넘어가 버렸다. 집의 순수한 의미는 잃어버린 지 오래다. 어느 순간 머니 게임을 지나 이데올로기 전쟁이자 계급 갈등의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게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이래저래 우리는 제로섬 게임이나 다름없는 부동산 중독 사회에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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