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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의 펭귄뉴스] 물범, 빙하 밑 심해까지 헤엄… 극지 생태계 관측의 첨병

입력
2020.03.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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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에 서식하는 웨델물범.
남극에 서식하는 웨델물범.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연구소에선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업무를 하다가 잠시 고개를 돌리면 넘실거리는 파도 위로 태양빛이 일렁이는 아름다운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바다만 보일 뿐 바다를 헤엄치며 사는 동물을 보진 못했다.

불과 보름 전, 남극 세종과학기지에 머물 땐 매일같이 바다에서 해양 동물을 관찰했다. 바닷가를 거닐고 있으면 물을 내뿜는 혹등고래, 돌고래처럼 수면을 튕기며 헤엄치는 젠투펭귄, 해안가 눈 위에서 코를 골며 자는 웨델물범을 보는 게 하루의 기쁨이었다. 

한국에서도 바다를 뛰노는 동물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 마음속으로 그려 본다. 야생 펭귄을 보는 건 불가능하지만 물범이라면 가능하다. 특히 점박이물범은 우리나라 서해뿐만 아니라 남해와 제주도, 동해안에서도 종종 관찰된다. 가장 많이 출현하는 인천 백령도에는 매년 200~400마리가 찾아온다고 알려져 있다.

남극에 서식하는 웨델물범.
남극에 서식하는 웨델물범.

우리나라에 사는 물범의 생태가 궁금해져서 연구 결과를 찾아봤지만 그 사례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다. 물범을 연구하는 기관이 많지 않은데다 연구하는 사람도 드물다. 야생 물범은 포획이 꽤나 까다로워서 연구를 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따라서 국내에선 아직 해당 분류군에 대한 체계적인 생태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기본적으로 어떻게 물범을 포획하고 연구 장치를 부착해야 하는지 기초적인 기술도 적립돼 있지 않다. 반면 프랑스, 영국 등 해외 선진 연구진은 이미 장기간에 걸친 현장 노하우를 바탕으로 각종 센서를 활용한 행동생태 연구를 활발히 진행 중이다. 현재 전세계 10개국이 국제적 포유류 연구 네트워크를 만들고 서로 자료를 공유하며 남극에서 북극에 이르는 큰 규모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힘들고 어렵다는 물범 생태 연구를 왜 다른 나라에선 열심히 하고 있을까. 물범은 해양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에 속한다. 먹이 사슬의 정점에 있기 때문에 생태계의 균형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와 동시에 해당 환경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생태계의 변화를 알기 위한 중요한 지표가 된다. 게다가 물범은 아주 깊은 곳까지 헤엄칠 수 있다. 보통 군용 잠수함이 들어가는 최대 깊이가 대략 1,000m라고 알려져 있는데, 남방코끼리물범은 2,132m까지 잠수한 기록이 있다. 그래서 최근 해양 연구자들은 이러한 물범의 심해 잠수행동을 이용해 깊은 바닷속 환경을 관측하는데 이용하기 시작했다.      

남극에 서식하는 웨델물범.
남극에 서식하는 웨델물범.

극지는 비교적 단순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현재 일어나고 있는 기후 변화를 알기 위해 상위 포식자의 생태적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 특히 중요하다. 게다가 물범과 동물은 연구선이나 무인 잠수정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빙하 밑 깊은 바닷속을 자유로이 헤엄치기 때문에, 남극 해저 환경 변화를 관측하는 첨병의 역할을 맡길 수 있다.  

지난해부터 이러한 극지 물범 연구의 필요성을 설득해왔는데, 다행히도 준비한 연구 계획서가 통과하여 올해 1월부터 극지 물범과 동물의 행동생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 막 연구의 초기 단계에 있지만 그 시작은 꽤 괜찮은 편이다. 세종과학기지 인근에 서식하는 웨델물범과 남방코끼리물범을 각 1개체씩 안정적으로 포획하고 방류하는데 성공했고, 이들의 혈액과 털 시료도 채취해서 분석하고 있다.

오는 10월 말에는 장보고 과학기지 근처에서 웨델물범을 붙잡아 장비를 부착할 계획이다. 만약 계획한 대로 신호가 잘 들어온다면 물범의 위치 정보와 함께 극지 수온과 염도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물범의 귀여운 얼굴을 보는 것도 좋지만 이들이 가져다 줄 데이터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  

글ㆍ사진=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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