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ㆍ방역 전문가 6인의 제언]
4명은 “의학적 효과 없어 불필요, 소모적 논쟁 그만”
“방역 인력ㆍ물자 취약지역 집중 투입을” 한목소리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환자 수가 24일 기준 800명을 훌쩍 넘긴 가운데 금주에만 중국에서 유학생 1만여명이 입국할 것으로 전해지면서 지금이라도 당장 중국 전역을 입국제한 지역으로 지정하고 중국에서 오는 외국인을 모두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가 전날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끌어올려 신종 코로나의 국내 확산세를 잠재우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후베이성만을 입국제한 지역으로 계속 둘 경우 별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목소리이다. 이날 기준 ‘중국 전역 입국제한 지역 지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참자는 76만여명에 달했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중국 내부에서 신종 코로나 확산세가 꺾였기 때문에 입국제한 지역 확대와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외국인에 대한 입국금지 시행의 실익이 적다는 입장이다.
의료계 등 학계의 중론도 정부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 중국 전역을 입국제한 지역으로 지정하는 게 이젠 의학ㆍ방역적 관점에서 무의미한 조치라는 의견이 많다. 대구ㆍ경북을 중심으로 퍼진 신종 코로나가 전국 유행단계로 치닫고 있는 만큼 소모적 논쟁을 지속하기보다 의료진에 적절한 방호장비 등 필요한 물자를 제 때 공급하고, 중증환자의 사망을 막을 의료전달체계 정비에 국가적 자원과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4일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정부는 입국제한 지역을 중국 후베이성(현행)에서 다른 지역이나 국가로 확대하는 방안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의 신규 확진환자 증가세가 꺾였고 지난 4일부터 특별입국절차를 시행하면서 중국으로부터 국내 입국자 규모가 대폭 감소했기 때문이다. 실제 중국의 신규 확진환자 규모는 지난 18일 1,749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점차 감소해 23일(409명)까지 나흘째 700명을 밑돌았다. 특히 후베이성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신규 확진환자는 23일 11명에 그쳤고 베이징 등 24개 지역에선 새로운 환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 21일 “1월 초반까지 매일 중국으로부터 2만명에 달하던 입국자는 현재 4,000명 수준으로 줄었고 1,000명은 내국인”이라고 밝힌 데 이어, 24일에는 김강립 복지부 차관이 “현재의 특별검역절차 수준으로 유입을 차단하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설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이날 “우리가 우려하는 중국동포나 중국인 밀집지역인 구로, 영등포, 금천구 등에서 확진자는 1명도 나오지 않았다”며 입국제한 확대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학계의 대체적인 입장도 정부와 비슷하다. 한국일보가 이날 감염예방ㆍ방재분야 전문가 6명에 대한 설문과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현재로서는 중국으로부터 입국을 금지하는 조치가 신종 코로나 확산 방지에 의학적으로 효과가 없어 불필요하다는 의견(4명)이 많았다. 이중 1명은 당초 중국 전역으로의 입국제한 지역 확대를 요구했다가, 이후 중국의 상황변화에 입장을 바꿨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 외 2명은 “기회를 놓쳤지만, 지금이라도 제한 대상을 넓히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들 6명은 전 질병관리본부장ㆍ한국역학회 편집위원장ㆍ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센터장ㆍ방재안전학회 초대회장 등으로 감염병 및 방재 분야 집단의 대표적인 전문가들이다.
먼저 입국제한 지역 확대에 부정적 입장을 낸 전문가들은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가 대규모로 유행하고 서울과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 집단감염이 확인된 상황에서 중국 입국자를 막아봐야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다고 봤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교수와 신형식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센터장의 경우, 지난달 입국제한 지역을 확대했다 하더라도 그 이전부터 중국과의 교류가 빈번했던 점을 고려하면 국내 확산을 막지 못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가 사실상 ‘실기’했다는 주장이 맞지 않다는 논리이다.
기 교수는 “초기 확진환자 30명(31번 환자 출현 전) 가운데 중국인 관광객은 2명뿐이고 이들마저 지난달 19~24일에 국내로 들어왔다”며 “한국이 미리 입국을 제한했다 해도 확진환자 가운데 이들 2명만 막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재갑 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제 와서 입국제한 확대를 말하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부가 때를 놓쳤다는 의견도 있다. 이달 말부터 찬성에서 입국제한 지역 확대 반대로 입장을 바꾼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이 병의 특성상 국내 유행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라면서도 “입국제한 지역 확대에 찬성했던 이유는 국내 유행 시점을 늦추면서 대비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반면 전병률 전 질병관리본부장과 조원철 방재안전학회 초대 회장은 지금이라도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차단하는 게 옳다는 의견을 내놨다. 확산 가능성이 있는 통로라면 막는 게 좋다는 주장이다. 전 전 본부장은 “사태 초기에 중국으로부터의 입국을 제한하지 못해 청정지역을 유지하지 못했다”면서 “입국을 제한하지 않으면 바이러스 원천을 차단할 수 없다”라고 설명했다. 중국 보건당국이 집중적으로 통제하는 지역만이라도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는 얘기다. 조 전 회장의 경우 대구도 출입을 봉쇄하는 강력하고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지금부터 지역주민을 이해시키는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중국으로부터 입국금지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 전문가들은 정부가 보완해야 할 점도 지적했다. 현재 정부는 대구발 신종 코로나가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는 봉쇄전략을 펼치면서 동시에 국가적인 수준에서 사망률을 낮추는 피해 최소화 전략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추진 속도가 느리고 자원 동원량도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우선 감기ㆍ독감 환자까지 몰려들어 의료기관이 마비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발열 등 증상이 나타나도 집에서 하루 이틀은 상태를 지켜보라는 정부의 권고는 비상식적이라고 꼬집었다. 김우주 교수는 “일반인에게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대한의사협회와 싸우지 말고 협조해서 지역별로 거점 동네의원을 지정해 보건소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부족한 방역인력을 모든 지역에 나눠 쓰지 말고 청도 대남병원처럼 취약지역에 집중 투입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신형식 센터장은 “위생관리가 안 되는 제2의 청도 대남병원을 찾아야 한다”면서 “불결한 병원은 문을 닫게 명령하고 교회와 학교, 교도소, 폐쇄병동 등을 살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입국자 뿐만 아니라 출국자를 관리해 다른 지역에 병을 전파하는 것도 막아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기모란 교수는 결국엔 물자 보급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치료약이 없는 상황에선 ‘비약물적 중재’라 불리는 감염원과 거리를 두는 활동을 철저히 해야 하는데 의료기관에 마스크나 방호복, 병상이 부족하지 않게 정부가 계획을 짜고 지원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박소영 기자 sosyoung@hankookilbo.com
세종=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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