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집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출간 기자간담회
“요즘 거대 담론을 다루면 문학이 아닌 듯 여기는 경향이 있잖아요. 하지만 아니에요. 거대 담론을 잘 다루는 게 바로 문학성입니다.”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내 한 식당에서 열린 평론집 ‘한국소설, 정치를 통매하다’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임헌영(79) 민족문제연구소장이 던진 화두였다.
임 소장은 “거대 담론이 사라진 시대가 됐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일상을 다루는 문학이 등장하고 인문학이 미세화하면서 역사ㆍ사회 같은 문제가 밀려나고 평론에서마저 거대 담론이 사라졌다”며 “언제부터 문학이 사회ㆍ정치 의제를 외면했는지 반문하면서 거대 담론을 다룬 작가들만 뽑아 책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 말 그대로 이번 평론집은 정치 권력을 ‘몹시 꾸짖는’ 작가와 작품을 추렸다. 장용학 이호철 최인훈 박완서 이병주 남정현 황석영 손석춘 조정래 박화성 한무숙. 모두 11명의 소설가다.
임 소장의 특히 주목한 작가는 이병주다. 평론집 제2부 전체가 이병주 얘기다. “한국 민족소설사의 최고봉은 단연 조정래지만 현대 정치사의 실황 중계자로는 이병주”라 했다. 임 소장에 따르면, 이병주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혐오한 이는 박정희였다. 이병주의 장편 ‘그를 버린 여인’은 박 전 대통령의 여성 편력이 소재지만 박 전 대통령을 총으로 쏜 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심리적 배경을 암시한다.
“소설에 여순사건이 나옵니다. 남로당원에서 고무신을 거꾸로 신은 박정희 때문에 처형 당했던 장교의 자식들이 나중에 ‘박정희 암살단’을 조직합니다. 이를 적발한 김재규는 그들로부터 왜 박정희가 죽어야 하는지 다섯 가지 이유를 듣게 돼요. 김재규는 1979년 10월 25일 밤 이들을 석방하고 그 다음날 박정희를 쐈습니다.” 임 소장은 “앞으로 누군가 더 연구해 진실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간담회 내내 임 소장이 거듭 강조한 건 문학계의 거대 담론 회복이다. “100년이 지난 뒤 남을 소설은 거대 담론을 다룬 소설입니다. 베스트셀러는 역사의 풍화작용 속에 사라지고 말죠.”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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