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우리가 간다] <13> 여자핸드볼
강재원 감독이 이끄는 여자핸드볼 대표팀은 지난해 9월 중국 안후이성 추저우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아시아예선에서 5전 전승을 거두며 올림픽 티켓을 거머쥐었다. 1984년 LA 올림픽 이후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도 함께 세웠다. 그러나 대표팀의 마음이 마냥 가벼운 것만은 아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4위에 그쳤고, 2016년 리우에서는 아예 조별리그에서 탈락, ‘리우 참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간 올림픽 효녀 종목(금 2, 은 3, 동 1)이었던데다 우리나라 최초의 구기 종목 금메달(1998 서울 올림픽)이라는 상징성까지 있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대표팀은 지난 쓰린 기억을 털어내고 오는 여름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명예회복을 노린다.
지난 10일 부산 기장체육관에서 만난 심해인(33) 권한나(31) 이미경(29) 강은혜(24)는 “이젠 ‘우생순’ 투혼을 넘어 우리만의 이야기를 새로 써나가야 할 때”라며 각오를 다졌다. 4명 모두 국가대표이자 부산시설공단 소속인데, 지난해까지 부산시설공단에서 뛰었던 류은희(30ㆍ파리 92)와 재활 중인 골키퍼 주희(31)가 대표팀에 합류하면 지난 시즌 SK코리아핸드볼리그 통합우승 멤버들이 고스란히 다시 뭉친다.
-10회 연속 올림픽 진출이다.
심해인(이하 심) “대표팀 주장이어서 성적 부담이 컸다. 하지만 막상 출전권을 따고 나니, 뭔가 이뤘다는 쾌거보단 오히려 담담한 느낌이었다. 주목을 많이 못 받아서 그런가 보다.” (웃음)
이미경(이하 이) “사실, 10회 연속 진출인 줄 몰랐다. 나중에 알았다.”
권한나(이하 권) “쉽진 않은 여정이었다. 주변에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시기에 더욱 부담스러웠다.”
강은혜(이하 강) “언니들은 2~3번씩 올림픽 출전 경험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음이다. 마냥 좋기만 했다.”(웃음)
-2016년엔 ‘리우 참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심 “준비 과정부터 여러모로 쉽지 않았다. 선수단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었고 당시 주축 멤버였던 (김)온아(SK슈가글라이더즈)까지 첫 경기부터 다치는 바람에 심리적으로 더 위축됐다.”
권 “개인적으로 2번째 올림픽이었기에 나름 기대가 컸는데 저조한 성적이 나왔다. 주변 상황을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의 책임이었다.”
12개 나라가 출전하는 올림픽 본선에는 한국을 비롯해 개최국 일본과 프랑스 브라질 앙골라 네덜란드까지 6개국이 진출을 확정했다. 나머지 6장은 러시아 스페인 노르웨이 스웨덴 등 유럽 국가들이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 12년 만의 메달을 다시 따내려면 결국 유럽세를 극복해야 한다.
-최근 여자핸드볼 판도는.
심 “최근 판도는 러시아의 독주라고 보면 된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네덜란드가 우승했지만, 실제로 대결해 보면 러시아가 더 강하다. 러시아는 ‘벽’이라고 느껴질 정도다. 그 뒤를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프랑스가 따르고 있다.”
권 “맞다. 최근 러시아가 감독을 교체했는데, 전술적인 면이 가미되면서 전력이 업그레이드됐다. 스페인도 전력이 상승 중이다.”
이 “세르비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속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좋은 체격 조건을 바탕으로 한 피봇이 강하다. 몸싸움도 거칠다. 확실한 피봇 때문에 단순한 플레이에도 당하곤 한다.”
- 올림픽 메달 전망은.
권 “본선 진출팀은 모두 강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세계선수권(일본 구마모토)을 통해 우리도 희망이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세계선수권 우승팀인 프랑스 브라질 등 강호들을 연파했다. (이)미경이와 (강)은혜에게 기대를 많이 건다. 특히 미경이는 일본에서 강할 것이다.” (웃음)
이 “2016년부터 지난해 2월까지 약 3년간 일본 히로시마에서 뛰었다. 일본 리그에서 매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등 경기장 분위기와 시설은 익숙하다. 일본에서 좋은 기억이 있는 만큼 도쿄 올림픽에서도 좋은 분위기를 이어가겠다.”
강 “(포지션이 피봇이라) 중앙에서 자리만 잘 잡고 있겠다. 언니들이 주는 공을 잘 (골문으로) 처리하면 될 것이다. 나머지는 언니들만 믿겠다.” (웃음)
-한국의 팀 컬러는.
권 “무지개다. 선수마다 다양하다. 특히 최근에는 뒷심이 좋아졌다. 점수 차가 좀 벌어져도 끝까지 따라가는 힘이 생겼다.”
이 “최근 스피드가 빨라지면서 돌파력이 좋아졌다. ‘잔 스텝’으로 상대를 속이는 페인트에도 능해졌다. 차곡차곡 하나씩 쌓아가는 묵직함도 생긴 것 같다.”
심 “응용력도 좋아졌다. 약속된 플레이가 무너졌을 때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능력이다. 일본의 경우 ‘시스템 핸드볼’이어서 짜 맞춰진 플레이엔 능하지만 돌발 상황이 나오면 연결이 안돼 스스로 무너지곤 한다.”
여자핸드볼은 벌써 16년째 ‘우생순 신화’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비인기 종목이었던 핸드볼 선수들이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에서 보여준 투혼을 그린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년작)이다. 실제로 당시 대표팀은 결승전 덴마크와 경기에서 전반전 동점, 후반전 동점, 그리고 연장전 동점까지 간 끝에 승부던지기에서 패해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우생순’은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올림픽 출전 소식을 전할 때 관용어처럼 따라붙는 표현이 됐다.
-이번에도 ‘우생순’ 투혼을 볼 수 있을까.
심 “올림픽이 다가오면 항상 나오는 단어다. 언니들이 이뤄 놓은 좋은 흐름을 후배들이 당연히 이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젠 시간이 많이 흘렀다. ‘우생순’이 아닌 우리만의 이야기를 새롭게 써나갈 때가 됐다.”
권 “그렇다. 우생순은 위대한 업적이지만, 꼬리표처럼 우리를 따라다닌 단어이기도 했다. 물론, 꼬리표를 떼려면 그만큼 좋은 성적과 투혼으로 국민들의 심금을 울려야 한다. 노력하겠다.”
- 올림픽에 임하는 각오는.
심 “나이 등을 생각할 때 마지막 올림픽이라 생각한다. 이번 대회에서 꼭 메달을 따야 하는 이유다. 런던 때는 팀원들의 부상이 도미노처럼 번졌다. 리우 때도 마찬가지였다. 도쿄에선 부상 없이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권 “런던 올림픽이 정말 아쉽다. 당시 노메달의 한을 이번엔 꼭 풀고 싶다.”
강 “핸드볼은 항상 올림픽 즈음해 반짝 특수를 누린다. 국내 리그나 국제 대회 등을 통해 핸드볼의 매력을 느껴보시길 부탁 드린다.”
이 “국민들의 응원을 요청하기보다 대표팀이 먼저 보여 드려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응원해 주시리라 믿는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우리만의 새로운 영화를 찍겠다.”
부산=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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