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데 1초, 구매하는 데는 10분, 실제로 사용하는 기간 1년. 그렇다면 그 이후, 버려진 물건이 사라지는 데까지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까? “100년이 넘죠. 이 모든 시간을 다 합쳐도, 쓰레기인 상태로 머무르는 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짧아요. 버려진 물건이 쓰레기로 멈춰있는 시간을 줄이고, 더 나아가 쓰레기 자체를 덜 생산해내야 지구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쓰레기’라는 사회 문제 해결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한 대학생은 졸업과 동시에 당시로서는 개념도 생소했던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벌써 13년차, 재활용품에 디자인과 활용성을 더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 사업을 펼치는 사회적 기업 ‘터치포굿’의 박미현(35) 대표에게는 거리마다 걸려있는 현수막, 다 쓴 페트병, 심지어 버려진 집까지도 모두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의미 있는 쓰레기’다.
“2000년대 후반만 해도, 재활용이 중요하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고 있었지만 일상 속에서 재활용 물품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컸죠. 품질이 낮고 저렴하니 가난한 사람들이 쓸 거라는 잘못된 인식도 있었고요. 그래서 단순한 재활용(리사이클링)이 아니라 재활용품을 새롭게 제품화하는 업사이클링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분리수거 비율은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정작 분리수거된 쓰레기가 재활용되는 비율은 통계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다. 2015년 한 조사에 따르면 버려지는 페트병의 96.4%가 재활용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국내 배출된 비닐 폐기물 중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재탄생된 비율은 5%에 불과했다. 국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쓰레기는 땅 속에 묻힌 채 수백 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셈이다.
터치포굿은 이렇게 버려지는 폐기물에 새로운 가치를 불어넣어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들과 손잡고 진행하는 ‘리싱크(Re-Sync)’ 프로젝트다. 리싱크의 특징은 ‘버리는 사람이 다시 그 물건을 쓸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있다. 박 대표는 “일반적인 재활용의 경우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 주워온 사람과 재활용하는 사람이 모두 다르다 보니 괜히 꺼림칙해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리싱크의 경우 기업이 스스로 폐기물을 거둬 다시 제품의 한 부분으로 만들거나 다른 의미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와 기업 모두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많은 기업들이 터치포굿의 ‘맞춤형 특별 과외’를 받기 위해 찾아온다. 아모레퍼시픽은 컨설팅을 받은 뒤 소비자가 다 쓴 화장품 공병을 매장에 가져오면 고객에게 포인트를 제공하고, 모아둔 공병을 녹여 줄넘기와 훌라후프 등 운동기구로 다시 만들었다. ‘피부를 건강하게 했던 화장품이 돌아와 몸도 건강하게 해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신세계백화점의 뷰티 편집숍 ‘시코르’의 경우 고객들로부터 다 쓰지 못한 립스틱을 받아 아동 미술치료에 사용되는 크레파스를 만들었고, 현대백화점은 고객들이 가져온 안 쓰는 안경을 수리해 베트남 소외지역에 기부했다. 박 대표는 “사람들은 기업이 쓰레기를 만들어내기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지만, 기업도 사람이 운영하는 곳인 만큼 자체적으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며 “특히 예전엔 제조사만 하던 고민을 이제 유통사나 플랫폼 기업까지 나누고 있어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맞춤형 업사이클링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터치포굿은 2015년 자체 연구소까지 만들었다. 대표적인 연구 기술은 녹인 폐플라스틱에서 실을 뽑아내 파우치부터 필통, 가방, 담요까지 만들어내는 노하우다. 재료가 되는 페트병의 특징에 따라 실의 질감과 활용법이 달라지기 때문에 꾸준한 연구가 필요한 분야다. 박 대표는 “벌써 90여종의 활용 가능한 소재를 발굴했다”며 “600가지가 넘는 폐기물 데이터베이스도 쌓아뒀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포장용기 없이 샴푸나 빨래 세제와 같은 제품 내용물만 판매하는 ‘프리사이클’에 관심을 두고 있다.
터치포굿이 시도하는 업사이클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역대 가장 큰 쓰레기’인 재개발 동네 자체를 재활용했다. 박 대표를 비롯한 직원들은 대전 신흥3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타지도 썩지도 않는’ 특수폐기물을 포함한 건축쓰레기들을 직접 발로 뛰며 모았고, 이 소재는 해당 지역에 들어설 아파트 모델하우스에 그대로 활용됐다. “누구네 집 자개장이 모델하우스 커피 바가 되고, 다른 집 마룻바닥은 테이블이 됐죠. 무너진 동네 담벼락과 집에서 가져온 벽돌은 ‘몇 번지에서 왔다’는 이름표를 달고 모델하우스 인테리어 소재로 활용됐고요. 반응이 폭발적이었죠.” 그렇게 만들어진 모델하우스에서도 함부로 버려지는 물건이 없도록 재활용과 기부가 이어졌다.
터치포굿은 업사이클 과정과 결과 모든 면에서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고자 부단히 노력 중이다. 제품 제작 및 포장 과정에는 취약계층 여성들이나 장애인 단체를 고용하고, 폐플라스틱으로 만들어낸 ‘코알라 담요’ 수익금은 호주 대형 산불로 터전을 잃은 코알라를 위해 기부한다. 이른바 ‘굿즈포굿(Goods for goodㆍ선(善)을 위한 제품)’이라 이름 붙인 캠페인이다. 박 대표는 “자원의 순환이라는 기본 개념을 바탕으로 재난, 동물복지, 건강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를 엮어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가 업사이클링에 있어 세계의 중심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국내 관련 기업만 200여개로, 종류가 많을 뿐 아니라 감성, 스토리 면에서 질적으로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부스 하나 못 채울 만큼’ 영세한 곳이 많다는 점이 맹점이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는 업사이클링 산업 자체가 너무 작아 거의 주목을 못 받는데, 사실 조금만 밀어주면 우리나라를 이끌 수 있는 ‘착한’ 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잠재력을 가진 기업들이 날개를 달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차원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