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저녁 ‘외국인 아파트 단지 출입 안내’라는 공지가 단체 대화방에 떴다.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면서 같은 아파트 주민 150여명이 가입한 소통채널이다. “중국 체류 14일 이내인 외국인은 외부와 격리돼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연초에 한국에 다녀온 터라 해당사항이 없어 무심코 지나쳤다.
중국인 이웃들이 앞다퉈 글을 올렸다. 대화방에 가입한 뒤 이 곳에서 동네 분위기를 미뤄 짐작하곤 했는데 이번엔 오가는 내용이 확연히 달라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주제로 서로 독려하던 것과 달리 한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부쩍 묻어났다. 당일 한국 정부가 위기경보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한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24일 주민 대표가 “한국인 입국자는 14일간 격리돼야 한다”고 공지했다. 일주일 전부터 항공편 입국 외국인의 격리 의무를 면제했는데, 유독 한국인만 콕 집어 규정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물론 ‘가짜 뉴스’였다. 일부는 “사실인지 먼저 확인해보자”며 신중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당수는 “*동 *호에 한국인이 살고 있다”며 리스트를 올리는가 하면 심지어 현재 그 집에 사람이 있는지까지 조사했다.
그날 밤 홍콩이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는 적색경보를 내리자 대화방에는 기다렸다는 듯 일국양제(一國兩制ㆍ한 국가 두 체제)라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해 홍콩 민주화 시위 당시 중국이 강조하던 구호가 한국을 향한 비수로 꽂히는 느낌이었다.
25일 주민위원회에서 전화가 왔다. 베이징에 언제 돌아왔는지, 어디에서 일하는지 등 4명 가족의 근황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2월 초 이미 등록한 내용인데도 재차 확인했다. 지인은 “우리 아파트는 파출소에서 직접 찾아와 확인하더라”고 했다.
26일 베이징 당국이 “입국자 관리를 강화한다”고 발표하자 주민들은 “당연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난징에 도착한 한국발 비행기 승객 중 3명이 발열 증세를 보였다’는 뉴스가 대화방에 올라왔다. 분위기가 들썩이는가 싶더니 “3명 모두 중국인”이라는 소식에 잠잠해졌다. 그러자 누군가 애써 “전염병에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가 중요하다”고 썼다. 하지만 별다른 반향은 없었다.
27일 후베이성 우한의 교도소에서 출소한 여성이 베이징으로 돌아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뉴스가 인터넷을 달궜다. 후베이성 이외 지역 신규 확진자 24명 중 무려 10명이 베이징에서 나왔다. 근처 상가에서 구급차에 환자를 태우는 동영상이 대화방에 올라왔다. “상황이 여전히 심각하다.” 안심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28일 아파트 정문 앞에서 중국인 아주머니 두 분과 마주쳤다. 장바구니를 들고는 쉴새 없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한국 정부는 왜 신경을 안 쓰는지 몰라.” 뭔가에 대해 불만이 많은 듯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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