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는 와중에 베트남 내 혐한 기류도 고조되고 있다. 특히 한국인의 다낭시 격리 사태 이후 그간의 호감이 비난으로 급격히 바뀌는 분위기다. 이에 베트남 한인회 등은 자체 홍보물까지 제작ㆍ배포하는 등 사태 수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28일 VN익스프레스 등 베트남 현지 매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따르면 혐한 감정의 시발점은 지난 25일 전파를 탄 한국의 한 방송뉴스였다. 해당 뉴스는 대구를 출발해 다낭에 입국하려던 한국인 20명이 격리 조치된 뒤 열악한 처우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뉴스 말미에 “아침에 (다낭시정부가) 빵 조각 몇 개를 주네요”라는 한 한국인의 발언이 나오자 베트남인들이 발끈했다. 이 한국인이 비난하듯 언급한 ‘빵 조각’은 베트남인들이 아침식사로 애용하는 ‘반미(베트남식 샌드위치)’였다. 한국인들이 김치나 비빔밥 등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듯, 베트남인들 역시 반미와 포보(쇠고기 쌀국수)ㆍ분짜(숯불돼지 고기 쌀국수)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방송 이후 베트남 언론들은 자존심이 상한 자국민들을 적극 대변하며 일제히 한국을 비난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인 승객들이 폐병원 대신 다른 격리시설을 요구해 다낭시가 4성급 호텔을 준비했다”는 등의 잘못된 정보가 베트남인들을 더욱 자극했다. 한국 총영사관과 다낭시정부가 한국인들을 격리할 호텔을 물색한 건 사실이지만 모두 거부당해 실제로는 이틀 내내 폐병원에 머물렀다.
베트남인들은 SNS에 ‘#베트남에 사과하라’는 등의 해시태그를 달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일부는 태극기의 태극 문양을 편집한 ‘코로나 코리아’ 이미지까지 유포했다. 이 이미지가 처음 실린 SNS 게시물에는 욕설에 가까운 댓글이 2,000개 가까이 달렸다.
이후에도 베트남인들은 다낭 격리 한국인들이 먹은 도시락과 자국 격리인들에게 제공된 도시락을 비교하며 “돈 많은 나라라고 유세 떠는데 너희들은 이미 좋은 대접을 이미 받았다”는 등의 비판을 이어갔다. 실제로 후잉득터 다낭시 인민위원장은 시내 한인식당에서 한식 도시락을 공수해 지급했고, 귀국하는 한국인들에게 직접 “불편을 끼쳐 미안하다”는 편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악화된 혐한 기류는 한인들이 밀집된 일부 아파트 단지에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한국인 전용 엘리베이터를 지정하는가 하면 승차공유서비스 그랩 차량들이 한국인 탑승을 거부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일부 현지 음식점은 한국인의 출입을 금지했고, 빨래 배달 등 한인 상대 서비스도 일부 중단됐다.
하노이 한인회의 한 간부는 “국민 영웅이던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을 향해서도 ‘14일간 격리 조치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할 정도로 반한 감정이 깊어지는 것 같아 고민”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사태가 악화하자 하노이ㆍ호찌민ㆍ하이퐁ㆍ다낭 등지의 한인회는 공동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우정은 국경이 없다”는 홍보물을 만들어 배포했다. 또 교민들이 먼저 베트남의 코로나19 방역 대책에 적극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자는 취지에서 대형 한인교회들도 일제히 공동예배를 중단했다. 한국인 학교도 베트남 교육부의 권고와 별도로 내달 15일까지 자체 휴교령을 내렸다.
하노이 한인 상공인연합회(KOCHAMㆍ코참) 관계자는 “베트남은 단순한 외국이 아니라 수많은 기업들이 진출한 한국의 확대된 경제영토”라며 “우호적이던 한국인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노이=정재호 특파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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