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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조지아 오키프(3.6)

입력
2020.03.0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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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표현주의 회화의 진경을 이룬 조지아 오키프가 14년 전 오늘 별세했다. 스티글리츠 사진. artic.edu, 위키피디아.
미국 표현주의 회화의 진경을 이룬 조지아 오키프가 14년 전 오늘 별세했다. 스티글리츠 사진. artic.edu, 위키피디아.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1887.11.15~1986.3.6)가 미국 뉴멕시코 고원ㆍ사막의 황량한 풍경과 햇빛, 하얗게 풍화하며 보석처럼 빛나는 짐승의 유골들과 처음 대면한 것은 1916년이었다. 29세의 무명이었던 그의 작품이 현대미술의 가장 화려한 데뷔 무대 중 한 곳인 뉴욕화랑 ‘291’에 처음 전시된 것도 그해였다. 유명 사진작가 엘프리드 스티글리츠(1864~1946)가 운영하던, 유럽 야수파 거장 마티스와 입체파의 피카소를 미국에 소개한 바로 그 전시장이었다.

훗날 오키프는 “뉴멕시코의 풍경을 보는 순간 그 곳이 내가 머물 곳이란 걸 깨달았다.(…) 하늘이, 별이, 바람이, … 모든 게 달랐다”고, “뼈들은 광활하고 텅 빈, 인적 없는 사막 위에서 생명의 정수를 날카롭게 벼르며 살아 있는 존재처럼 보였다. 내가 본 그 어떤 것보다 강렬한 아름다움이 거기 있었다”고 말했다.

1929년 무렵부터 뉴욕과 뉴멕시코를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던 오키프는 스티글리츠가 숨지던 46년 뉴멕시코 산타페로 완전히 이주, 외부와의 접촉을 최대한 끊고 사실상 은둔하며 작품활동에 몰두했다. 그는 타인을 함부로 판단하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혐오했다.

헝가리 몰락 귀족과 아일랜드 계 농민의 7남매 중 둘째로 위스콘신주 선프레리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12세 무렵부터 화가의 꿈을 키우며 수채화를 공부했다. 시카고와 뉴욕에서 그림을 공부한 뒤 학교에서 강의하며 그림을 그리던 그의 인생이 급변한 것도 만 23년 연상의 스티글리츠를 처음 만난 1916년부터였다. 작품과 화가에게 매료된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출세를 도왔고, 둘은 열애 끝에 24년 결혼했다.

스티글리츠는 오키프의 초상과 누드 등 사진을 찍어 전시했고, 오키프는 여성 성기를 연상시키는 꽃들의 관능을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성생활을 포함한, 그들의 자유분방한 결혼 생활도 세인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사회의 편견은 오키프에게 더 가혹했다. 출세를 위해 남자(스티글리츠)를, 성을, 이용했다는 거였다. 27년 스티글리츠가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진 뒤부터 오키프가 뉴멕시코에서 보내는 시간은 더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가 실연의 상처 때문에 세상을 등졌다고 보는 건 그에 대한 가혹한 오해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게 아니라 마침내 자유를 얻어, 생명과 아름다움을 찾아갔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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