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조7000억… 코로나 방역 빼면 소비활성화 등 대증요법 치우쳐
정부가 4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한 11조7,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확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추경을 공식화한 뒤 기획재정부가 추경안을 완성한 지난 2일까지 불과 일주일 여만에 마련된 긴급 추경안이다.
이번 추경 규모는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ㆍ메르스) 사태 때(11조6,000억원)를 웃돌고, 실제 지출하는 돈(세출 확대ㆍ8조5,000억원)은 2009년 금융위기 대응 추경(세출 확대 17조2,000억원) 이후 최대인 ‘역대급’이다.
하지만 사태의 긴급성과 심각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감염병 대응 분야를 빼면 대부분 기존 예산 사업을 확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공급망 붕괴 같은 구조적인 경제 충격에 대한 대응보다는 소비활성화 같은 ‘대증 요법’에 치우쳤다는 지적도 받는다. 문 대통령이 애초 주문했던 “정책적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일주일 만에 짠 추경
문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비상한 경제시국에 대한 처방도 특단으로 내야 한다. 정책적 상상력에 어떤 제한도 두지 말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의 피해 최소화와 국민의 소비진작, 위축된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과감한 재정투입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번 추경 예산은 새 사업 발굴보다, 기존 수혜계층에 지원을 늘리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방역 관련 사업을 제외한 6조2,000억원 예산의 대부분은 저소득층과 아동수당 대상자, 노인일자리 참여자 등 취약계층에 제공하는 소비쿠폰(2조326억원), 영세사업장 추가 임금보조(5,962억원) 청년고용장려금 확충(4,874억원) 등 기존 사업 대상자에게 조금 더 혜택을 주는 방식이다.
방역예산 2조3,000억원조차 상황이 더 악화될 때를 대비한 예비비 1조3,500억원,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의료기관과 환자, 자가격리 대상자에 대한 보상 8,300억원 등이 대부분이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신속한 국회 통과를 위해서인지 최소한의 정책에 그친 것 같다”며 “기존 복지체계에서 감지되지 못한 비전형 노동자 등을 품을 ‘재난수당’ 방식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원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교수는 “사람들이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데 소비쿠폰은 누가 쓰고 문화공연은 누가 보러 가겠느냐”면서 “지금은 방역 중심으로 예산을 편성해서 빨리 상황을 종식시키는 데 집중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추경 이후 준비해야” 지적도
이번 추경 이후 정부가 2차, 3차 추경을 내놓을 가능성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 추가 대응이, 조만간 종식되더라도 무너진 경제를 살리기 위한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홍남기 부총리도 “이번 대책으로 끝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요한 대책이 있다면 그 (추경) 이상의 대책도 함께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며 후속 대책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에 추경 이전 정부 대책들이 피해 극복을 위한 업종별, 지역별 미시 대책 중심이었다면, 추경에는 경제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대책이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중경 한국공인회계사회장(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소비와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 분야에 걸친 감세 정책과 정부의 지출확대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며 “추경 집행에 그치지 않고 계속 추가 경기대책을 발굴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도 “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고 있는데, 이로 인한 어려움을 겪는 업종에 세제ㆍ현금 등 직접 지원책은 잘 보이지 않는다”면서 “소비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산업이 버틸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건전성 악화 딜레마
이번 추경 재원은 한국은행 잉여금 7,000억원과 기금의 여유자금 2조7,000억원을 빼면 10조3,000억원을 적자국채 발행으로 조달해야 한다. 올해 본예산 편성 당시보다 예상 수입은 2조5,000억원 줄어드는 반면, 지출은 8조5,000억원 늘어나면서 나라살림의 적자 폭이 10조원 이상 늘어나게 되는 셈이다. 이에 따른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4.1%로, 1998년(-4.7%) 이후 최대이자 국가채무비율(올해말 41.2%)도 40% 선을 뛰어넘게 된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아직 코로나19 관련 예산이 얼마나 더 들어갈 지 모르는 상황에서 너무 허둥지둥 만든 추경안”이라며 “재정 악화에 비해 불안 해소 효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세종=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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