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은은하게 적시고 있는 석양이 보듬고 있는 건 자연이 아니다. 색깔도 모양도 제 각각인 플라스틱이 쌓인, 쓰레기 산이다.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언덕, 그 틈바구니에서 용케 고개를 내밀고 있는 몇 가닥의 풀들이 애처롭게 보인다. 지구는 이미 플라스틱에 점령당했다.
이곳만이 아니다. 미국의 과학정보 사이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따르면 2015년 지구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은 83억톤, 이 중 쓰레기가 된 플라스틱은 63억톤이다. 그 가운데 49억톤이 지구 구석 구석 묻히거나 돌아다닌다. 히말라야 산맥, 아이슬란드 빙하, 아마존 강변, 세렝게티 초원 같은, 사람이 드문 곳도 예외는 아니다.
2년간 세계여행을 다니던 청년 이동학이 그 여정에서 만난 쓰레기들을 한데 다 모은 게 바로 ‘쓰레기책’(오도스 발행)이다.
내 눈 앞에 당장 안 보인다고 쓰레기가 없는 게 아니다. “쓰레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땅과 바다, 해양동물을 거쳐 언젠가는 다시 우리의 식탁으로, 몸 속으로 들어온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지구의 지배자는 누구인가. 푸른 하늘, 붉은 노을 아래 알록달록한 쓰레기 산은 그 답을 말해주는 듯 하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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