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행객 비행기표 구하지 못해 발동동… “영사는 면세구역 안에서 뒷짐만”
“터키와 이스라엘에서 귀국 항공편이 취소되고 호텔에 격리됐을 때 대한민국은 어디 있었을까요….”
최근 해외 성지순례를 다녀온 여행단 30명은 하나같이 외교부가 ‘실종’을 넘어 국민을 ‘배신’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터키 이스탄불 공항에서 2시간 시차로 항공편이 취소되고,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호텔에 격리돼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던 며칠동안 현지 영사들은 하나마나한 변명에 도움이라곤 전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 16일 인천국제공항을 떠난 여행단 30명은 당초 귀국일인 1일보다 이틀 후인 3일 귀국했다. 1일 오전 2시20분발(현지시각) 터키항공을 타고 인천으로 귀국하려던 일행이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지난달 29일 오후 9시. 터키 측의 입국제한 조치가 1일 0시에 시작되면서 항공편이 이미 취소돼 있었다. 현지 영사는 그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여행객들에 따르면 이틀 동안 숙소를 제공한 터키항공 측은 태국 방콕이나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 후 비용은 알아서 물라는 주문이었다. 시간도 항공요금도 맞지 않았다. 한국 여행사가 한밤중 비상이 걸렸다. 다행히 자체 항공권을 발권할 수 있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 가입한 터라 한국에서 제3국을 경유하는 항공편을 검색한 끝에 2일 오후 7시30분 ‘이스탄불~도하(카타르)’, 3일 새벽 2시10분 ‘도하~인천’ 카타르항공을 끊은 것이다. 추가 항공요금은 여행객들이 물기로 했다.
우리 여행객들은 어렵사리 통화가 성사된 영사로부터 “공항 면세구역에 있어 못 나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귀국대책 때문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3일 새벽 터키 출국장에서 만난 노란 조끼의 영사가 “바깥에는 여행사가, 우리는 출국자만 챙기고 있다”고 말해 한바탕 난리가 났다.
여행객들은 “해외에서 국민을 보호해야 할 영사라는 분이 공항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한국인을 챙기기는커녕 이미 항공권 발급받아 출국장에 들어온 사람을 챙길 일이 뭐가 있냐”며 “터키항공보다도 못하다”고 토로했다.
이 여행객들은 지난달 22일에도 예루살렘 성지순례 중 이스라엘 측의 입국제한 조치로 호텔에 격리돼 이틀 밤낮을 도시락으로 때웠다. 요르단 여행길도 막혔다. 같은달 24일 터키로 탈출한 이들은 “1,000여명의 한국인이 이스라엘에 묶여 공항바닥에서 밤을 새우는데도 영사가 2, 3명 단위로 항공표를 구해 탈출시키고 있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도하발 인천행 항공기에선 갓 이스라엘을 탈출한 한국인도 만났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현지에 장기간 거주하는 한국인조차 나가라는 분위기고, 전세계 절반 가까이 한국에 빗장을 걸어 잠그는데 외교부는 뭘 하나요.”
성지순례자들은 3일 밤 귀국했지만, 외교부를 믿고 현지 공항에서 목을 빼고 기다리고 있을 여행객만 떠올리면 혈압부터 오른다. 5일 오전 9시 현재 한국인 입국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국가는 96개국이다.
대구=전준호 기자 jhjun@ha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