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3월 13일 새벽 3시 15분, 미국 뉴욕 퀸즈 큐가든(Kew Gardens) 인근 한 아파트 입구에서 술집 매니저로 일하던 28세 여성 캐서린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가 14차례나 칼에 찔린 채 강간 살해당했다. 괴한의 습격을 받은 그는 비명을 지르며 숨이 끊어지기까지 약 30분간 도움을 호소했지만, 더러 밖을 내다본 이들도 있었지만, 도움을 주거나 경찰에 신고한 이는 없었다.
그 사건은, 언론의 선정적 보도와 함께, 도시인들의 냉담한 방관자 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내며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1964년 한 해 뉴욕에서만 636명이 살해당했다. 뉴욕 경찰 당국은 사건 직후 다이얼 ‘0번’의 긴급 신고전화를 개설했고, 1968년 미국 연방 차원의 ‘911’ 시스템이 도입됐다.
범인인 당시 29세 남성 윈스턴 모슬리(Winston Mosley, 1935~2016)는 닷새 뒤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모슬리는 아내와 두 아이를 둔 전과 없는 중산층 남성이었다. 경찰은 조사 과정에서 그가 제노비스 외에 두 명의 여성을 더 강간 살해했고, 8차례 강간과 30여 차례 절도 행각을 벌인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아내가 야간 근무를 하는 밤이면 차로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고 진술했다.
사건 직후 언론은 38명의 이웃이 범행 현장을 목격하거나 알아챘지만 다른 누군가가 신고할 거라 여겨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전문가들은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 ‘제노비스 신드롬’ 등의 용어를 만들어 세태를 개탄했다. 수많은 논문과 영화, 책, 뮤지컬이 만들어졌다. 훗날 확인된 바, 목격자 숫자는 언론이 부풀린 근거 없는 거였고, 상당수 주민들은 제노비스의 목소리가 비명이라기보다는 흐느낌 같았다고, 술 취한 연인의 흔한 다툼이라 여겼다고 증언했다. 두 명이 신고를 했고, 70세 노부인이 뒤늦게 나와 쓰러진 제노비스를 경찰이 올 때까지 보살핀 일도 확인됐다. 제노비스는 병원으로 옮기던 중 숨졌다.
모슬리는 7월 7일 구속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1967년 뉴욕주가 사형제를 폐지하면서 그는 항소 끝에 종신형으로 감형됐고, 만 52년 수감 끝에 2016년 옥사했다. 1968년 한 차례 탈옥해 강간을 저지르고 인질극을 벌인 적도 있었다. 그는 2015년까지 18차례 가석방 심사를 받았지만 모두 기각됐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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