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투표만 남아… “32년간 집권 가능”
종신집권을 향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권력 연장 프로젝트가 첫 발을 뗐다. 푸틴의 대선 재출마를 허용하는 헌법 개정안이 11일(현지시간) 러시아 상ㆍ하원 심의를 가볍게 통과했다. 국민투표만 거치면 그는 4년 후 다섯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서 최장 2036년까지 합법적으로 집권할 수 있게 됐다. 별다른 정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번 개헌이 종신집권 준비 과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타스통신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개헌안은 이날 하원(국가두마) 최종 심의에 이어 상원에서도 통과됐다. 상원은 전체회의에서 찬성 160표, 반대 1표, 기권 3표의 압도적 표차로 안건을 가결했다. 앞서 하원도 최종 심의에서 찬성 383표, 기권 43표로 개헌안을 채택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반대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러시아 상원은 연방을 구성하는 85개 ‘연방 주체’ 대표들의 모임 격으로 이들이 지역 의회로 개헌안을 보내 3분의 2 찬성을 얻으면 승인 절차가 마무리된다. 지역대표가 개헌안을 지지한 만큼 지역의회 인준은 사실상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개헌안에는 의회 권한 강화, 국제협정에 대한 국내법 우위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핵심은 현행 6년인 대통령 임기를 두 차례로 제한하는 조항이다. 언뜻 보면 독재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막겠다는 취지로 보이지만 “기존 임기는 백지화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이렇게 되면 2024년 4기 임기를 마치는 푸틴도 다시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기존 헌법대로라면 푸틴은 3연임 금지조항에 가로막혀 20년 권좌에서 내려와야 한다. 뱌체슬라프 볼로딘 하원의장은 이날 “개헌은 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필수 조치”라며 푸틴을 적극 두둔했다.
남은 절차는 헌법재판소 심사와 국민투표뿐이다. 헌재 심사가 개헌안 추인 단계임을 감안하면 내달 22일 국민투표에서 과반 찬성을 얻을 경우 푸틴의 재집권 걸림돌은 완전히 사라진다. 엉뚱하게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마저 푸틴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듯하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13일 모스크바에서 대규모 개헌 반대 시위를 계획했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내달 10일까지 5,000명 이상의 공공모임이 금지됐다.
로이터통신은 “산술적으로 푸틴이 6년 임기의 두 차례 대선에서 모두 당선되면 무려 32년간 러시아를 통치하는 셈”이라고 전했다. ‘세기의 독재자’로 불리는 이오시프 스탈린의 29년 집권 기록을 깨는 ‘합법적인 독재자’가 될 것이란 얘기다.
푸틴의 집권 연장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전망은 내부에서도 엇갈린다. 발렌티나 마트비옌코 상원 의장은 “정치적 불확실성을 제거함으로써 러시아를 약화시키려는 외국의 시도에 맞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대항마’로의 부상을 염두에 둔 얘기다.
반면 싱크탱크 R폴리티크의 타티아나 스타노바야 대표는 “변화에 대한 모든 희망이 무너졌으며 이는 크렘린궁에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이 이제는 종신 대통령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비난했고 그의 측근은 이번 개헌을 ‘쿠데타’로 규정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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